월세 10개월 밀린 세입자 짐 치웠더니, 제가 범죄자가 됐습니다
월세 10개월 밀린 세입자 짐 치웠더니, 제가 범죄자가 됐습니다
월세 체납 세입자 짐 뺐다가 '재물손괴·건조물침입' 피소
'자력구제'의 법적 함정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월세 10개월치와 보증금까지 다 까먹고 버티는 세입자를 내보내려 했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됐습니다.”
상가 임대인 A씨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월세를 장기 연체한 임차인의 짐을 빼냈다가 재물손괴와 건조물침입 혐의로 고소당하고 수천만 원대 민사소송까지 휘말린 것이다.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는지, A씨의 사연을 통해 법의 함정을 들여다봤다.
시작은 10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의 점포에 입주한 임차인은 월세를 내지 않기 시작했고, 연체료는 눈덩이처럼 불어 보증금을 모두 소진했다.
A씨가 점포를 비워달라고 요구하자 임차인은 오히려 “수천만 원을 주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며 버텼다. 분노한 A씨는 결국 직접 행동에 나섰다. 자물쇠를 열고 점포에 들어가 컴퓨터 등 주요 집기는 택배로 보내고, 낡은 책상과 쇼케이스 등은 처분했다.
결과는 혹독했다. 임차인은 A씨를 재물손괴와 건조물침입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법원은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약식명령으로 벌금 100만 원을 부과했다. 건조물침입 혐의는 경찰 단계에서 ‘혐의없음’으로 결론 났지만, 임차인이 이의를 신청하면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여기에 더해 임차인은 “집기 파손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수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A씨는 “원인 제공은 임차인이 했는데, 왜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느냐”며 절규했다.
내 가게 문 열었더니 ‘침입범’…월세 안 낸 세입자는 ‘피해자’?
A씨의 가장 큰 의문은 ‘어떻게 내 소유의 건물에 들어간 것이 죄가 되느냐’는 점이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임대인의 ‘자력구제(스스로의 힘으로 권리를 실현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고 경고한다.
법무법인 선의 김우중 변호사는 “임차인이 월세를 연체했더라도 점유할 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반드시 건물인도 청구소송(명도소송)을 통해 승소 판결을 받고, 법원의 강제집행 절차를 통해 건물을 인도받는 것이 유일한 합법적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도 법무법인 한원의 조훈목 변호사는 “임대인 소유가 아닌 임차인의 물건을 임의로 처분했기에 혐의를 벗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약식명령을 받은 뒤 7일 안에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았다면 유죄가 사실상 확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의 경우 이미 불복 기간이 지나 재물손괴죄 전과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형사 유죄, 민사소송에 어떤 영향 미치나
A씨의 가장 큰 걱정은 형사 처벌이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 미칠 영향이다. 이에 대해 변호사들의 의견은 미묘하게 갈리지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실무적으로 형사 결과가 민사보다 빨리 나오는 경우가 많고, 형사 처벌을 받으면 민사소송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형사 유죄 판결이 민사 재판에서 A씨의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무법인 한별의 이주한 변호사는 “손괴의 경위가 임차인의 명백한 채무불이행과 무단점유에 따른 정당한 점유 회복 목적이었음을 적극 주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차인의 불법 행위가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다는 점을 입증하면, A씨가 물어야 할 손해배상 책임을 크게 줄이거나 A씨가 받아야 할 연체료 등과 상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로 넘어간 ‘건조물 침입’ 혐의, 무죄 가능할까
현재 A씨에게 가장 중요한 관문은 검찰로 넘어간 건조물침입 혐의다. 여기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야 민사소송에서도 반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법무법인 한별의 김전수 변호사는 “임대차 계약이 사실상 해지됐고 보증금도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 소유자로서 관리권을 행사한 것은 ‘정당행위’ 또는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주장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1차적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는 점도 A씨에게 유리한 신호다. 임차인의 장기 불법점유, 명도 요청 증거 등을 토대로 검찰 단계에서 무혐의를 강력히 소명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