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껍데기뿐인데…돈 빼돌린 의심 드는 전·현직 대표, 개인 재산에 '빨간 딱지' 가능?
회사는 껍데기뿐인데…돈 빼돌린 의심 드는 전·현직 대표, 개인 재산에 '빨간 딱지' 가능?
폐업 앞둔 법인에 받을 돈 있지만 재산은 '0'…실세 의심 前대표는 다른 회사 운영 중

폐업 법인의 채권자는 대표 개인 재산에 직접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상법상 이사의 책임을 근거로 전현직 대표 모두에게 별도의 소송을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 AI 생성 이미지
A씨는 한 법인에 대해 세 건의 집행권원(채권의 존재와 범위를 국가가 공적으로 인정한 문서)을 가진 채권자다. 하지만 채무자인 법인은 폐업을 앞두고 있고, 파악된 재산도 없는 상태다.
A씨는 현재 대표이사가 이름만 빌려준 '바지사장'이고, 과거 대표이사가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며 자금을 빼돌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 과거 대표는 현재 다른 회사를 운영 중이다.
A씨는 법인이 아닌 대표이사들의 개인 재산이나 과거 대표가 운영하던 다른 법인의 자산에서라도 채권을 회수하고 싶다. 껍데기만 남은 회사를 상대로 한 집행권원이 과연 대표 개인에게도 효력을 미칠 수 있을까?
'바지사장'과 '실세 사장', 둘 다 책임 물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인에 대한 집행권원만으로 대표 개인의 재산에 바로 강제집행을 할 수는 없다. 변호사들은 대표이사를 상대로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 새로운 집행권원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핵심 법리는 상법 제401조(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이다. 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임무를 게을리해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는 조항이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 정진열 변호사는 "대표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법인 재산을 고의로 감소시켜 채권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개인적인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대표가 실질적인 경영자였다면 책임을 피할 수 없을까. 변호사들은 등기상 대표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업무를 지시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정진열 변호사는 "과거 대표자가 퇴임 후에도 형식적 대표자를 내세워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했다면, 이사와 동일하게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이름만 빌려준 '바지사장'도 안심할 수는 없다. 법률사무소 평정 김단 변호사는 "현재 대표자가 명의상 대표에 불과하더라도 업무 일체를 위임하고 직무를 전혀 집행하지 않은 것 자체가 선관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책임의 근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법인과 개인은 하나? '법인격 부인론'은 신중해야
회사가 사실상 대표이사 개인의 사업체처럼 운영됐다면, 법인의 채무를 대표 개인의 채무로 볼 수는 없을까. 이를 '법인격 부인론'이라 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법인격 부인론을 주장하는 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법원이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예외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는 "우리 법원은 이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므로, 법인과 대표자의 자금 혼용 등을 입증할 구체적 금융자료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역시 "법인격 부인론은 법인과 개인의 재산 및 업무가 사실상 혼용되고 법인격이 채무면탈 수단으로 남용된 예외적인 경우에 인정되므로 입증 문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변호사들은 법인격 부인론을 주된 공격 방법으로 삼기보다는, 상법상 이사의 책임 등을 주장하면서 예비적으로 추가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봤다.
'가압류'와 '계좌추적'…증거 확보가 채권 회수의 첫걸음
변호사들은 채권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소송 전략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전·현직 대표 모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법률사무소 도결 최우준 변호사는 "두 사람을 함께 상대로 예비적 청구를 구성하는 방식이 보다 안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소송 전 대표들의 재산을 묶어두는 '가압류' 신청도 가능하다. 다만, 가압류를 위해서는 대표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피보전권리)과 재산을 빼돌릴 위험이 있다는 점(보전의 필요성)을 법원에 소명해야 한다.
결국 관건은 증거 확보다. 법인 자금이 대표 개인에게 부당하게 넘어간 금융 기록 등이 핵심이다. 법률사무소 반석 최이선 변호사는 "소송 제기와 동시에 법원을 통해 채무 법인 및 대표자 계좌에 대한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과 과세정보 제출명령을 신청하여 자금 유출 정황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