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의심 직원의 '사표', 회사는 왜 붙잡지 못하나
횡령 의심 직원의 '사표', 회사는 왜 붙잡지 못하나
법률가들 "5월 31일 전 '이 조치' 없으면 퇴사 막을 길 없다" 경고

거액을 오송금하고 1년간 숨긴 공직유관단체 직원이 감사 직후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는 횡령을 의심하지만 자체 규정의 허점으로 사직을 막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 AI 생성 이미지
거액의 오송금 사실을 1년간 숨겨 온 공직유관단체 직원이 감사 착수 직후 사표를 던졌다.
회사는 횡령을 의심하며 사직을 막고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스스로 만든 내부 규정의 허점 때문에 발목이 잡힌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정해진 '골든타임' 안에 감사 절차를 마무리하거나 형사 고소 카드를 꺼내지 않으면, 회사가 직원의 퇴사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1년간의 침묵과 뒤늦은 감사…사표로 맞선 직원
사건의 시작은 2024년 10월 31일, 한 공직유관단체 자금 담당자 A씨가 일으킨 오송금 사고였다. A씨는 약 5개월 뒤인 2025년 3월 거래처와의 연락을 통해 이 사실을 알았지만,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흐른 2026년 3월 24일, 오송금된 돈을 받아야 할 거래처가 팀장에게 직접 연락하면서 A씨의 '비밀'은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A씨는 개인적인 이유로 이미 퇴직 의사를 밝히고 연차를 소진하던 중이었다.
회사는 A씨의 1년 넘는 보고 누락 등을 근거로 횡령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감사에 착수하는 한편, 2026년 4월 22일 공식 접수된 A씨의 사직서에 대해 '수리 보류'를 통보했다.
사표 막으려다 '셀프 족쇄'…사규의 아이러니
회사가 '사직서 수리 보류'라는 강수를 뒀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회사 스스로 만든 내부 규정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의원면직 제한 규정'에 따르면, 직원의 사직을 막으려면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조사·수사 중이거나 ▲감사 결과 '정직' 이상 중징계 처분 요구가 내려진 때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내부 감사가 '진행 중'일 뿐, 아직 수사기관에 고발되지도 않았고 감사 결과가 나와 중징계 요구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다.
법무법인 연우 이숭완 변호사는 "현 시점에서 사규상 의원 면직 제한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횡령을 의심하면서도 정작 그를 묶어 둘 법적 근거가 부족한 셈이다.
D-데이 '5월 31일'…전문가들의 두 가지 묘수
전문가들은 회사가 A씨의 퇴사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민법 제660조에 따르면 월급제 근로자가 사직서를 내면, 회사가 수리하지 않더라도 통상 다음 달 말일이 지나면 근로계약이 자동으로 끝난다. A씨의 경우, 5월 31일이 그 마지노선이다.
법률사무소 지헌 임대환 변호사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무기한 수리를 보류해 근로관계를 붙잡아 두기는 어렵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변호사들은 두 가지 현실적인 카드를 제시했다. 첫째, 5월 31일 전 감사를 속전속결로 끝내고 '중징계 의결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숭완 변호사는 "5월 31일 근로관계 종료 전까지 감사를 완료하고 중징계 의결요구를 진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라며 이를 통해 사규상 면직 제한 요건을 채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둘째는 '형사 고소'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형사고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채무자에게 심리적으로 매우 큰 압박을 주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 하에 형사고소를 진행 하시면 됩니다"라며 즉시 수사기관에 사건을 넘겨 사규의 첫 번째 요건('수사 중인 때')을 충족시키라고 강조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횡령'과 '과실' 사이
결국 이 사건의 본질은 A씨의 행위가 '단순 업무 과실'인지, 아니면 돈을 가로채려는 '고의적 비위'인지에 달려 있다.
여울법률사무소 배진혁 변호사는 "오송금 사실을 인지하고도 장기간 보고하지 않은 행위는 사규나 제반 사정에 따라 횡령 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있으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단순 업무 과실에 그칠 수도 있으므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라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지적이다.
법률사무소 한강 김전수 변호사 역시 "실제 횡령 정황 입증 없이 장기간 사직 수리를 무한정 보류하는 경우에는 향후 인사상 분쟁이나 절차 위법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회사는 5월 31일이라는 시한 내에 A씨의 비위 행위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근거로 중징계 요구 또는 형사 고소라는 공식 절차에 돌입해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에 직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