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매출이 더 높은 게 죄?…하도급법의 딜레마
내 매출이 더 높은 게 죄?…하도급법의 딜레마
하청업체보다 잘 나가는 게 문제…대금 떼일 위기, 법적 구제책은?

부품을 납품한 A사가 자신보다 매출 규모가 작은 B사에 납품했다는 이유로 하도급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다. / AI 생성 이미지
최종 발주처의 경영 악화로 대금 지급이 불투명해진 위기 상황. 부품을 납품한 A사는 자신보다 매출 규모가 작은 B사에 납품했다는 이유로 하도급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혔다.
법의 문턱은 높았지만, 전문가들은 하도급법이 아니더라도 민법상 채권자대위권, 3자 직불합의 등 다른 방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매출액이 발목 잡은 '하도급법'의 문턱
커스터마이징 부품을 제작·납품하는 A사(연 매출 420억 원)는 중간 업체인 B사(연 매출 275억 원)를 통해 최종 발주처 C사에 부품을 공급해 왔다.
그런데 C사의 경영 상태가 나빠지면서 B사가 대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고, 이는 연쇄적으로 A사의 대금 미수 위험으로 번졌다.
A사는 발주처 C사에 직접 대금을 청구하는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을 알아봤지만, 예상치 못한 장벽에 부딪혔다. 바로 A사의 매출액이 B사보다 높다는 사실이었다.
현행 하도급법은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원사업자(B)의 연간매출액이 수급사업자(A)보다 많아야 하도급 관계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A사는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법무법인 대환의 김상훈 변호사는 "본 사안에서는 A의 연간매출액이 420억 원으로 B의 275억 원보다 많아, B는 하도급법상 원사업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A는 하도급법 제14조에 따라 발주자 C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라고 명확히 지적했다.
법은 막혔어도 길은 있다…전문가들이 제시한 3가지 '우회로'
하도급법의 문은 닫혔지만, 대금을 확보할 방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은 민법 등 다른 법률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은 '3자 간 직불합의'다.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평산의 정진열 변호사는 "A, B, C 3자가 모여 'C가 B에게 줄 대금을 A에게 직접 지급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직불합의서를 작성하면 가능합니다"라고 조언했다. C의 경영이 완전히 파탄이 나기 전에 3자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합의가 여의치 않다면 '채권자대위권' 행사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는 A가 채무자인 B를 대신해 B의 권리(C에 대한 대금채권)를 행사하는 제도다.
이푸름 법률사무소의 이푸름 변호사는 "민법상 채권자대위권을 활용하면 A가 B를 대위하여 B의 C에 대한 대금채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B가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재산이 없는 무자력 상태라는 점 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최후의 수단으로 '채권 가압류 및 압류' 절차도 있다. B가 C로부터 받을 대금을 A가 소송에서 이기기 전까지 다른 곳에 주지 못하도록 묶어두는(가압류) 조치다. 이후 B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C로부터 직접 돈을 받아내는 방식이다.
"계약서 없어도 발주서가 증거"
A사와 B사 사이에 별도의 계약서가 없다는 점도 A사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또한 법적 다툼에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정진열 변호사는 계약서가 없는 경우에도 거래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충분하다면 유효한 계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귀사가 제출한 견적서, B가 보낸 발주서, 귀사가 부품을 실제로 납품한 거래명세표 및 세금계산서가 있다면 그 자체로 완전히 유효한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봅니다"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