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이상은 '법의 사각지대'…친족 성폭력, 왜 공소시효 폐지 목소리 높나
13세 이상은 '법의 사각지대'…친족 성폭력, 왜 공소시효 폐지 목소리 높나
피해 고백 평균 나이 52세
성년 된 후 7년 지나면 '면죄부'

생성형 AI로 만든 본문과 무관한 이미지
가장 믿었던 가족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들이 그 사실을 처음 입 밖으로 꺼내는 나이는 평균 52세라는 통계가 공개됐다. 10대 시절 시작된 끔찍한 고통을 수십 년간 가슴에 묻어두고서야 겨우 용기를 낸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들의 용기는 현행법의 '공소시효'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되기 일쑤다.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시간이 이미 끝나버린 뒤이기 때문이다.
13년간 2090번의 성폭행…가족이 만든 '심리적 감옥'
친족 성폭력은 단순 범죄가 아닌, '심리적 지배'를 동반한다. 뉴질랜드 이민 가정에서 벌어진 한 사건은 그 참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계부는 의붓딸이 12살이던 해부터 13년간 무려 2090회에 걸쳐 성폭행과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오랜 기간 '그루밍' 상태에 놓여 자신의 피해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뒤늦게 범죄임을 깨닫고 신고했지만, 가해자인 계부는 "딸이 원해서 한 일"이라며 뻔뻔한 주장을 펼쳤다. 이 충격으로 피해자의 친모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재판부는 계부의 파렴치함을 질타하며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가해자가 외삼촌이나 친오빠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 없던 조카를 19년간 성폭행한 외삼촌 사건에서 대법원은 "겉보기와 달리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항거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했지만, 부모는 오히려 가해자인 아들 편에 서서 여러 변호인을 선임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피해자에게 '심리적 감옥'이 되어 침묵을 강요한다.
법의 사각지대, '13세 이상' 청소년 피해자
문제는 공소시효다. 현행법은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13세 이상 19세 미만일 경우, 성인이 된 날로부터 7년(DNA 등 과학적 증거가 있으면 10년)이 지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
이는 피해 고백 평균 연령이 52세인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기준이다. 노범래 변호사(로엘 법무법인)는 지난 7월 31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식하고 말할 준비가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구조"라며 "중·고등학생 나이대의 피해자들이 공소시효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8살부터 고교 시절까지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한 피해자는 18년이 지난 뒤에야 기억이 뚜렷해졌지만, 공소시효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법적 안정성' vs '피해자 보호'…해법은?
이 때문에 미성년 대상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피해자가 겪는 특수한 상황을 법이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 문제,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증거를 확보하고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법적 안정성'의 원칙이다. 여성가족부 역시 "친족 성폭력의 특수성엔 공감하지만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범래 변호사는 "이분법적 접근보다 친족 성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한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벌어지는 반인륜적 범죄의 뿌리를 뽑기 위해,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사회와 입법부가 귀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