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모델 사진' 동의, 한번 하면 10년 노예 계약?…'동의 철회권' 법적 쟁점
성형외과 '모델 사진' 동의, 한번 하면 10년 노예 계약?…'동의 철회권' 법적 쟁점
수술 동의서와 함께 서명한 사진 촬영 동의서…환자 '철회 요구'에 병원 '10년 유효' 맞서

A씨가 성형수술 받기 전 무심코 한 서명으로 인해 8년째 그의 얼굴이 병원 광고에 사용되고 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수술대 오르기 전 무심코 한 서명, 8년째 내 얼굴 사진이 병원 광고에 쓰이고 있었다.
2017년,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결심한 A씨. 그는 수술 동의서와 함께 내밀어진 '사진 촬영 동의서'에도 서명했다. 수술을 받으려면 당연히 동의해야 하는 절차인 줄로만 알았다.
병원 측은 "눈만 나온다"고 했지만, 막상 병원 홍보물에 쓰인 사진에는 흉터와 점까지 고스란히 담겨 지인이라면 누구든 알아볼 수 있었다. 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A씨는 자신의 사진을 지워달라고 요구했지만 병원은 "10년간 사용에 동의했으니 문제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A씨의 얼굴은 영원히 병원의 소유물이 되어야 하는 걸까.
"수술하려면 필수인 줄"…얼떨결에 한 서명이 족쇄로
A씨의 악몽은 '충분한 설명 없는 동의'에서 시작됐다. 수술이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경황이 없는 환자에게 수술 동의서와 사진 촬영 동의서를 함께 제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A씨는 사진이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 얼마나 사용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 사진 촬영을 대가로 수술비를 할인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수술을 위한 필수 절차로 오인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2020년, A씨는 병원에 사진 사용 철회를 처음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2025년 현재, 다시 용기를 내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10년 계약이라 안 된다"는 차가운 벽이었다. A씨는 "내 얼굴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한 기분"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병원의 '10년 계약' 주장, 법적으로 유효할까?
법률 전문가들은 병원의 주장이 법적 근거가 약하다고 입을 모은다. 핵심은 '개인정보 보호법'이 보장하는 정보 주체의 권리다. 법무법인 휘명의 김민경 변호사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4조에 따라 정보 주체는 언제든지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동의를 철회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즉, 한번 동의했더라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그 동의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설령 동의서에 '10년'이라는 기간이 명시되어 있다 해도, 이 조항이 환자의 '동의 철회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변호사는 "계약서에 '10년간 사용 가능' 문구가 있더라도, 본인이 동의 철회를 요청하면 병원은 이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술과 연계해 충분한 설명 없이 받은 동의는 '자발적 동의'로 보기 어려워 그 효력 자체를 다툴 여지도 크다.
대법원 역시 미용성형 시술에 대해 의사가 환자에게 매우 상세한 설명을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2다94865 판결). 이 설명 의무는 수술 자체뿐만 아니라 사진 촬영 같은 부수적 동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내 얼굴 돌려달라"…환자가 쓸 수 있는 법적 카드
A씨가 자신의 얼굴 사진을 되찾기 위해 쓸 수 있는 법적 카드는 여러 가지다. 변호사들은 단계적 대응을 조언한다.
첫째, 병원 측에 '내용증명' 우편을 발송하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근거해 사진 사용 동의를 공식적으로 철회하며, 불응 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방법이다. 법무법인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법리적 검토가 동반된 법무법인 명의의 내용증명은 병원 측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둘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하는 방법이다. 병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동의 철회를 거부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시정명령이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마지막 카드는 민사소송이다. 법원에 초상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더 이상 사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과거 유사 사건에서 병원의 무단 사진 게시에 대해 "초상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며 환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서울중앙지법 2022나1939 판결).
결국 법은 '한 번의 동의'보다 '정보 주체의 자기결정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수술 전 가볍게 했던 서명 하나가 평생의 족쇄가 될 수 없다는 명확한 신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