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수습에 '평생 동종업계 이직금지' 각서…변호사들 "무시해도 될 정도"
3개월 수습에 '평생 동종업계 이직금지' 각서…변호사들 "무시해도 될 정도"
기간·대가 없는 경업금지 약정은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이직 통보 의무'는 의견 엇갈려

3개월 수습 근무후 퇴사한 A씨에게 회사가 '평생 동종업계에 이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이 서약서가 유효할까?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3개월 수습 근무 후 퇴사하며 '평생 동종업계에 이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한 A씨. 어렵게 따낸 새 직장 합격 소식에도 기뻐할 수 없었던 건, 발목을 잡는 이 서약서 한 장 때문이었다.
과연 이 '족쇄' 같은 약속은 법적으로 유효할까? 법조계 전문가들은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무효 계약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경업금지 약정'의 효력을 판단할까?
법조계는 경업금지 약정(근무했던 회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지 않기로 하는 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 법원이 엄격한 '저울'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회사가 보호해야 할 '영업비밀'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대법원 판례(2009다82244)에 따르면, 법원은 크게 네 가지를 따진다.
①회사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이 있는지
②근로자의 지위가 영업비밀에 깊이 관여했는지
③이직을 막는 기간·지역·직종의 범위가 합리적인지
④회사가 금지 약속에 대한 대가를 지급했는지다.
A씨의 사례를 이 저울에 올려보자. 변호사들의 분석은 명쾌했다. 한동하 변호사(디에이치 법률사무소)는 "3개월 수습 직원에게 기간 제한도 없는 경업금지 약정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라며 "그냥 무시해도 된다"고 단언했다.
김동훈 변호사(클리어 법률사무소) 역시 "수습 기간 3개월 근무로 회사의 핵심 영업비밀을 충분히 습득했다고 보기 어렵고, 기간이나 보상이 전혀 명시되지 않았다면 무효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회사가 지킬 비밀도, 직원이 받은 보상도 없었으니 저울은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던 셈이다.
'이직 통보 의무' 조항, 법적 효력은 어디까지인가
그렇다면 '이직 시 회사에 통보하라'는 조항은 어떨까. 이 조항의 법적 구속력을 두고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다수 의견은 따를 필요가 없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김상윤 변호사(법률사무소 정중동)는 "퇴사한 근로자의 사생활 및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조항은 무효"라며 "법적으로 이직 사실을 전 회사에 알릴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찬 변호사(더신사 법무법인)도 "서약서에 통보 조항이 있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거나 불합리하면 따를 의무가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 통보 의무 자체는 유효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박영재 변호사는 "경업금지 약정 본체가 무효라 하더라도, 이직 사실을 알리기로 한 '통보 의무' 조항 자체는 유효하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보하지 않았다고 회사가 즉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어렵지만, 추후 영업비밀 침해 소송 등에서 '통보 의무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씨가 평생의 족쇄라고 믿었던 서약서는 사실상 빈껍데기였던 셈이다. 다만, 부당한 약정이라도 서명한 이상 잠재적 분쟁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씨의 사례는 법이 종이 위에 쓰인 부당한 약속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다툼의 여지까지 완벽히 제거해주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