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은?
조치 취하지 않은 사용자에 5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2019년 7월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명확히 정의하고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셔터스톡
직장에서 상사의 심한 질책이나 동료의 따돌림이 계속된다면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2019년 7월부터 시행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
이전까지 직장 내 괴롭힘은 법적 정의조차 없어 피해자들이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법은 단순한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공격·모욕·비하 행위, 고립·차별 행위, 성적인 괴롭힘, 그리고 노동환경이나 근로자의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행위 등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을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청주지방법원은 상급자가 직장에서 지위의 우위를 이용하여 근로자에게 퇴사 내지 직무전환을 강요한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로 인정했다(청주지방법원 2024. 5. 23. 선고 2023나53373 판결).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행위 주체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여야 하며,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야 한다. 셋째,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여야 한다.
여기서 '직장 내'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법실무연구회의 『근로기준법 주해』에 따르면, 직장 외의 장소나 근무시간 외, 심지어 온라인이나 전화상으로 이루어지는 언행도 모두 포함된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사용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명확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해야 하며, 조사 기간 동안 피해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된 경우, 사용자는 피해근로자의 요청에 따라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행위자에 대해서는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울산지방법원은 2022년 11월 4일 선고한 2022과221 결정에서 사용자의 조치의무 위반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법원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 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의 발생 사실을 확인하였음에도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근무 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경우" 근로기준법 제116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다면 여러 방식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우선, 사업장 내 자체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신고하여 조사와 조치를 요구하는 방법이다. 많은 기업들이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이나 분쟁해결을 위한 내부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둘째, 행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면 노동청은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된 경우 사업장에 개선지도를 할 수 있다.
셋째, 민사상 구제를 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 근로자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의 원인이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20다270503 판결). 피해자는 가해자 및 사용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9년 12월 5일 선고한 2018가단5215933 판결에서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을 한 근로자의 행위가 외형적·객관적으로 사용자인 회사의 사무집행행위와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 회사는 민법 제756조에 따라 사용자로서 가해 근로자와 공동하여 피해 근로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마지막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형법상 폭행, 협박, 명예훼손, 모욕 등의 범죄에 해당할 경우 형사고소를 통한 구제도 가능하다. 특히 신체적 폭력이나 심각한 언어적 폭력이 수반된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사망한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해 "기상캐스터는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도 "괴롭힘으로 볼만한 행위가 있었다"는 이례적인 결론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고용노동부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분류하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이번 사건에서는 예외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가 오 씨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기상캐스터가 한 방송사에 전속되지 않고 여러 곳에서 일할 수 있으며, 매니지먼트 업무를 하는 기획사에 소속된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근로자성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직장 내 괴롭힘이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근로자로 인정받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므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등 비정형 근로자들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에 대한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근로자성 인정 범위를 확대하거나 별도의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