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이사 온다더니"…집주인 말 바꿈에 2% 대출 허공에
"아들 이사 온다더니"…집주인 말 바꿈에 2% 대출 허공에
"6월 9일 나가세요" 카톡 합의해놓고 "돈 없다"…세입자 '이자 폭탄' 위기

집주인이 아들 실거주를 이유로 한 조기 퇴거 합의를 번복해 세입자가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 / AI 생성 이미지
"아들이 들어와 살 겁니다." 집주인의 이 한마디에 계약 연장을 포기한 세입자 A씨. 심지어 집주인의 요청으로 이사 날짜까지 앞당겨 합의했지만, 이번엔 "기분 나쁘다", "돈이 없다"며 말을 바꿨다. A씨가 집주인의 약속을 믿고 새집 계약과 대출까지 모두 마친 뒤였다.
결국 2%대 고정금리 대출 기회를 날리고 4%가 넘는 변동금리 대출을 떠안게 된 A씨.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나눈 약속은 법적 효력이 있을까? 억울하게 떠안게 된 손해는 어디까지 보상받을 수 있을까?
"6월 9일에 나가주세요"…두 달 뒤 "못 준다" 말 바꾼 집주인
모든 것은 집주인의 계약 갱신 거절 통보에서 시작됐다. 2026년 4월 9일, 임대인은 "아들이 실거주해야 한다"며 A씨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했다.
며칠 뒤인 4월 14일, A씨는 임대인과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기존 만기일(7월 8일)보다 한 달 빠른 6월 9일에 집을 비우고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했던 A씨는 이 합의를 믿고 사흘 뒤인 4월 17일, 곧바로 새 전셋집 계약을 맺고 대출과 이사 일정까지 확정했다.
하지만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 5월 7일, 임대인은 돌연 "원래 계약일인 7월 8일에 나가라"고 말을 바꿨다. A씨가 자신의 실거주 약속을 의심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에는 "아들네 전세가 안 나가 돈이 없다", "6월 9일 퇴거는 당신 편의를 봐 준 것일 뿐, 그날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로 인해 A씨는 연장할 수 있었던 2%대 고정금리 버팀목대출을 포기하고, 4.2% 변동금리 대출을 새로 받아야 했다. 2천만 원 오른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해 가족에게 돈을 빌렸고, 약속한 날짜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추가 대출까지 알아봐야 할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
전화·카톡 합의, 법적 효력 있나?…"명백한 계약"
법률 전문가들은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라도 법적 효력을 갖는 '합의'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진열 변호사는 "임대차계약의 합의해지는 반드시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화·카톡으로도 ① 종료일(6/9), ② 보증금 반환이라는 합의의 주요 내용이 특정되었다면 구두·전자적 합의로서 법적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A씨가 임대인과 '6월 9일'이라는 날짜를 특정해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약속한 증거(통화 녹취, 카톡 메시지)가 있다면, 이는 양측이 동의한 새로운 계약, 즉 '합의해지'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김상훈 변호사 역시 "임대인이 이를 단순한 편의 제공이라 주장하며 번복하더라도, 이미 질문자님이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임대차 계약과 대출을 실행한 이상 임대인의 일방적 의사만으로 합의를 파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 번 성립한 계약은 어느 한쪽이 마음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다.
늘어난 이자·이사비, 어디까지 보상받나
임대인의 일방적인 합의 번복으로 A씨가 입게 된 손해는 배상청구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A씨가 합의를 믿었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하게 된 비용이 청구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2%대 대출을 연장하지 못하고 4%대 신규 대출을 받게 되면서 발생한 이자 차액 ▲새로운 집을 구하기 위해 지출한 부동산 중개보수 및 이사비용 등이다.
다만, 손해를 인정받기 위한 핵심 조건이 있다. 정진열 변호사는 "손해와 합의 번복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이 관건이므로, 대출 실행일·이사 계약 체결일이 합의일(4/14) 이후임을 소명하는 자료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합의가 있었기에 새로운 계약을 하고 비용을 썼다는 점을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한 사유인 '아들의 실거주'가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법은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낸 뒤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는 경우, 세입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장 할 일은?…'내용증명'부터 보내라
전문가들이 A씨에게 가장 먼저 추천한 대응은 '내용증명' 발송이다. 내용증명이란 '언제, 누가,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우체국이 공적으로 증명해 주는 제도다.
심규덕 변호사는 "즉시 내용증명으로 6월 9일 합의 사실과 보증금 반환 의무, 미이행 시 손해배상 청구 의사를 명확히 통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향후 법적 다툼이 벌어졌을 때 A씨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만약 합의한 6월 9일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이사 가기 전 반드시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배진혁 변호사는 임차권등기명령을 "보증금을 못 받고 이사해도 대항력을 유지해 주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 절차를 마쳐야만 A씨가 새 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기존 집에 대한 보증금 우선 반환 권리를 잃지 않게 된다.
이 모든 조치와 함께 보증금 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