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업무추진비⋯지방의원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펑펑 쓰는 구조적인 원인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눈먼 돈' 업무추진비⋯지방의원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펑펑 쓰는 구조적인 원인

2020. 09. 21 18:51 작성2020. 09. 23 14:32 수정
안세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의원 가족 식당서 '펑펑'⋯눈먼 돈 된 지방의원의 업무추진비

적용 가능한 모든 조항 검토해봐도⋯변호사들 "현행법으로 규제 어렵다"

신법 통과되거나, 규칙 신설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문제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써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이 돈을 지방의원들이 '주머니 쌈짓돈'처럼 쓴 사건이 또 터졌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의원 업무추진비는 쌈짓돈? 펑펑 쓰더니, 알고 보니 의원 가족 식당."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써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이 돈을 지방의원들이 '주머니 쌈짓돈'처럼 쓴 사건이 또 터졌다.


잊을 만하면 전해지는 소식이다. 기사 래퍼토리도 거의 똑같다. 업무추진비 카드가 유독 자주 긁히는 식당이 있는데, 알고 봤더니 식당 주인이 의원 본인 또는 배우자⋅친척⋅자녀라는 식이다.


이번엔 전남 화순군, 서울 마포구 의원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많게는 96번, 총 2000만원의 업무추진비가 화순군 의원 아내가 운영하는 한우 전문점으로 흘러갔다. SBS '마부작침' 팀에 따르면 비슷한 사례가 지난 2년간 총 140건에 달한다.


같은 문제로 '도돌이표'가 찍히고 있는 건, "구조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변호사들은 분석했다. "현재 이런 문제를 제재할 법령이 미비하다"며 "신법을 통과시키든, 규칙을 신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원 본인 식당 가서 긁어도⋯'불법' 아니라 유야무야

"위치도 좋고, 맛집이라서 많이 갔다." (서울 강북구의회 〇〇〇 의원)

"(관련 규정은) 없다. 도덕적인 문제로⋯. " (서울 마포구의회 〇〇〇 사무국 직원)


공분을 살 때마다 의원들은 이렇게 답했다. 그런 뒤 실제로 유야무야 잊혔다. 검찰 조사도 있었고, 감사원도 감찰을 벌였지만, "처벌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저 말대로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가능한 모든 조항을 고려해봐도, 처벌하는 게 마땅치 않다"고 했다.


실제로 업무추진비 사용 규칙, 기획재정부 지침 등 어디에도 "업무추진비 사용으로 의원 본인 및 가족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해선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결국 "일단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고, 형법상 다른 조항(횡령⋅배임⋅직권남용 등)을 최대한 끌어와도 현재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변호사들은 분석했다.


횡령도, 배임도, 직권남용도 안되는 이유

더프렌즈 법률사무소의 이동찬 변호사는 "횡령죄(①)가 되려면 업무추진비를 중간에 빼돌리거나 가로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특정 업체에 몰아 썼을 뿐이므로 어렵다"고 했다. 법무법인 서린의 김준성 변호사도 "허위영수증을 발행한 게 아니라 실제로 음식을 제공 받았으므로 이 죄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배임죄(②) 역시 "어렵다"고 법률사무소 명현의 최영식 변호사가 분석했다. 이 죄가 성립하려면 '임무위배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이런 사적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전혀 없으므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직권남용죄(③)도 어렵다"고 했다.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해야 하는데, “여기에 해당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법률 자문
'더프렌즈 법률사무소'의 이동찬 변호사, '법률사무소 명현'의 최영식 변호사. /로톡DB
'더프렌즈 법률사무소'의 이동찬 변호사, '법률사무소 명현'의 최영식 변호사. /로톡DB


'이해충돌방지법' 통과시키면 해결되지만⋯번번이 국회 문턱 못 넘어

결국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다. 적어도 "이를 방지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이해충돌방지법안이란, 공직자가 직무에 있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법안이다.


수차례 발의에도 8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이 법안은, 지난번 20대 국회에도 제출됐었다. 하지만 당시 상임위원회에서도 논의되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 다시 재도전할 예정이다.


최영식 변호사는 "현재 해당 법안에 '직무관련자가 본인 및 친족 등 사적 이해관계자인 경우 회피 신청하도록' 하는 규정이 들어가 있다"며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게 가장 직접적인 방법일 것"이라고 봤다.


이동찬 변호사도 "입법 정책의 문제"라며 "우선 국회가 시민들의 생각을 적극 청취하고, 반영하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분석했고,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 통과되는 게 쉽진 않을 것"이라며 "대신 규제를 만들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영식 변호사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국회 통과가 어렵다면, 업무추진비 사용 규칙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본인 및 친족 등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을 담으면 해결될 것 같다"고 했다.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보다 간단한 시행규칙 개정이라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취지였다.


법무법인 세결의 최영 변호사도 구체적인 규칙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을 확인하는 절차와 만약 부정사용이 확인될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는 의무를 규정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법률 자문
'법무법인 서린'의 김준성 변호사, '법무법인 세결'의 최영 변호사, '법률사무소 서약'의 신성현 변호사. /로톡DB
'법무법인 서린'의 김준성 변호사, '법무법인 세결'의 최영 변호사, '법률사무소 서약'의 신성현 변호사. /로톡DB


"공직자의 재산권 침해"라는 반론도⋯

이해충돌방지법안이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건, "해당 법안이 제한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반론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성격이 짙다는 취지였다. 이 때문에 지난 2015년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통과될 때도 '이해충돌' 부분은 결국 빠진 채 통과됐다.


하지만 최영식 변호사는 "이런 반론을 반영하더라도, 적어도 '보고 규정'은 넣는 게 맞아 보인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이번 사건처럼 공직자의 가족 등 친족과 계약할 때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법안에 넣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불가피한 경우라면 허용은 하되, 보고하고 근거자료를 마련하라는 식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김준성 변호사도 "지금의 업무추진비 관련 규정은 제한이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일부를 제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된다"고 했고, 법률사무소 서약의 신성현 변호사 역시 "업무추진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 지급된 것인데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겠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밝혔다.


최영 변호사도 "사용처를 제한하거나, 한도를 정하는 것이 큰 제한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보였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