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었는데 8472만원 패소, 법원의 '유령재판'
집에 있었는데 8472만원 패소, 법원의 '유령재판'
단 한번 '폐문 부재'에 재판 실종…변호사들 “판결 인지 후 2주, 놓치면 끝”

보이스피싱 연루 A씨는 법원의 단 한 번 '폐문부재'를 이유로 한 공시송달로, 자신도 모르게 8472만원 소송에서 패소했다. / AI 생성 이미지
보이스피싱에 연루돼 벌금형을 받은 것도 억울한데, 나도 모르는 사이 8472만원의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사실을 1년 반 만에 알게 됐다면?
실거주지에 단 한 번 '폐문부재'였다는 이유로 법원은 소송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재판을 진행, 판결을 확정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명백한 절차 위반이라며 판결을 뒤집을 마지막 '골든타임'이 단 2주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확한 인용을 바탕으로 구제받을 법적 대응 전략을 집중 취재했다.
나는 집에 있었다…8472만원 패소, 날벼락은 어떻게 시작됐나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조직에 통장을 제공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A씨. 형사 절차가 마무리된 줄 알았던 그에게 진짜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2026년 2월 9일이었다.
우연히 법원 사건 기록을 열람했다가, 보이스피싱 피해자 B씨가 자신을 상대로 제기한 8472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미 패소가 확정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판결은 무려 1년 반 전에 내려져 있었다.
A씨는 소송이 제기된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재판부는 2024년 7월 31일 A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한 차례 소송 서류를 보냈으나 '폐문부재(문이 잠겨있고 사람이 없음)'를 이유로 송달에 실패했다. 그러자 불과 20여 일 뒤인 8월 20일, '공시송달' 처분을 내리고 재판을 진행했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서류를 법원 게시판 등에 일정 기간 게시함으로써 당사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피고가 재판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불출석하자,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전부 받아들여 A씨에게 8472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A씨는 판결문을 열람한 2026년 2월 9일에야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이 통장 압류가 있었지만, 기존 벌금 미납으로 이미 압류된 상태라 추가 압류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단 1회 '폐문부재' 후 공시송달? “명백한 절차 위반”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사례가 법원의 명백한 절차상 하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유안의 조선규 변호사는 "법원은 송달받을 자의 주소지 등을 알 수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공시송달을 할 수 있는데, 단 1회의 '폐문부재'만으로는 주소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피고의 주소가 명확한데도 단 한 번 집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 소식을 알리지 않고 판결을 내린 것은 문제라는 의미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이주헌 변호사 역시 "민사소송법상 공시송달은 피고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허용됩니다"라고 강조하며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1회의 폐문부재 이후 곧바로 공시송달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송달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분석했다.
법원은 통상 주간 및 야간 송달, 특별송달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한 후에야 최후의 수단으로 공시송달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골든타임은 단 2주, '추완항소'가 유일한 구명줄
그렇다면 A씨는 꼼짝없이 8400여만 원의 빚을 떠안아야 할까. 다행히 방법은 있다. 변호사 12명 전원이 일관되게 제시한 해법은 바로 '추완항소'다.
추완항소란,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항소 기간(판결문 송달 후 2주)을 놓쳤을 때, 그 사유가 사라진 날로부터 2주 안에 항소를 제기해 재판을 다시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는 "판결문이 공시송달로 송달되어 A씨가 소송 계속 사실을 모르고 판결이 확정된 경우, 이는 '책임질 수 없는 사유'에 해당하여 추완항소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핵심은 시간이다. 올인 법률사무소 허동진 변호사는 "8,400만 원이라는 거액의 판결이 확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골든타임이 단 일주일 남았습니다"라고 긴급성을 강조했다. A씨가 판결 사실을 처음 인지한 2026년 2월 9일로부터 2주째가 되는 2월 23일까지 반드시 법원에 추완항소장을 제출해야만 기회를 살릴 수 있다.
법무법인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추완항소장을 제출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압류 절차를 멈추기 위한 강제집행정지 신청도 병행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항소심에선 뭘 다투나? '책임 감경'이 핵심
추완항소가 받아들여져 항소심이 열리면, A씨는 1심에서 행사하지 못했던 방어권을 행사하게 된다. 형사재판에서 벌금형을 받은 사실이 있어 민사 책임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배상액을 대폭 줄일 여지는 충분하다.
법무법인 도모 김강희 변호사는 "특히 실제 금원을 취득하지 않았고 범행 인식이 없었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정리되면 책임 부정 논리가 충분히 성립합니다"라고 설명하며 책임의 범위를 다툴 수 있음을 시사했다.
법률사무소 HY 황미옥 변호사는 '피해자의 과실'을 주장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황 변호사는 "이와 같은 유형 사건의 경우, 피해자에게 과실이 인정되어 통장명의자에게 인정될 손해배상책임이 제한되는 판결 사건이 다수입니다"라며, "가령, 피해자가 제대로 된 확인 절차 없이 저금리 대출의 말을 믿고 돈을 이체한 사안이 대다수라 이러한 이체 과정 등에 있어 피해자 측에게도 과실을 인정하는 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항소심에서는 범죄 가담 경위와 고의성 여부, 그리고 피해자의 과실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다퉈 8472만 원 전액을 책임져야 하는 부당한 결과를 바로잡는 것이 핵심 목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