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실 선풍기 치우라는 민원…냉방은 '배려' 아닌 '법적 의무'입니다
경비실 선풍기 치우라는 민원…냉방은 '배려' 아닌 '법적 의무'입니다
체감온도 40도 폭염 속 ‘선풍기 갑질’
법은 “최소한의 존엄”을 말한다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으로부터 '경비실 선풍기를 치우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내용의 호소문. /온라인 커뮤니티
경기 부천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경비원의 손글씨 호소문 한 장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체감온도 4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 에어컨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선풍기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는 것마저 문제 삼은 한 입주민의 민원 때문이다. “공동 전기료가 얼마나 나오겠냐”는 것이 이유였다.
이웃들은 “비인간적인 행동”이라며 분노했지만,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갑질’ 문제를 넘어선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근무 환경을 보장하는 것은 법이 정한 사용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선풍기 한 대를 둘러싼 이 씁쓸한 논쟁은 법적으로 정당한 요구였을까.
‘배려’가 아닌 ‘법적 권리’, 근로기준법의 최저선
경비실 선풍기를 끄라는 민원은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순간, 사용자인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법을 위반하게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근거가 되는 것은 근로기준법이다. 이 법은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며, 이를 통해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폭염 속에서 최소한의 냉방기기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법의 대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한 입주민이 써 붙인 대자보의 내용처럼, 최소한의 근무환경 보장은 ‘배려이기 전에 기본’인 셈이다.
‘안전’ 문제, 산업안전보건법의 강제 의무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법적 근거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찾을 수 있다. 산안법은 아파트 경비원처럼 모든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66조는 사업주가 고온 환경으로 인해 근로자가 건강장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찜통 같은 경비실에서 선풍기마저 끄게 하는 것은 이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할 소지가 매우 크다.
법원은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판단할 때, 작업장의 특성과 예상되는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체감온도 40도가 넘는 경비실의 위험성은 상식적으로도 명백하다.
관리소의 의무는 ‘민원 수용’ 아닌 ‘경비원 보호’
따라서 이 사안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법적 의무는 한 입주민의 부당한 민원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비원의 건강과 안전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관리사무소는 논란이 된 선풍기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에어컨 설치, 충분한 휴식시간 제공, 수분 공급 등 추가적인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를 진다. “추후 조치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는 관리사무소의 입장은 이러한 법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