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만 찍고 계약서는 '실종'…연습생 묶는 '3년 족쇄' 계약, 법적 효력은?
지장만 찍고 계약서는 '실종'…연습생 묶는 '3년 족쇄' 계약, 법적 효력은?
계약서 미교부·사업자 미등록 등 위법 행위 드러나…전문가들 "위약금 없이 해지 가능, 소송 협박에 굴하지 말아야"

데뷔를 꿈꾸던 한 연습생이 계약서를 받지 못한 채 유령 회사와 계약했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데뷔도 전에 1400만원 빚더미? 지장만 찍고 사라진 계약서, '유령 회사'의 덫에 걸린 연습생의 눈물
데뷔의 꿈을 안고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지만, 손에 쥔 건 계약서가 아닌 1400만 원의 위약금과 소송 협박이었다. 아직 어떤 활동도 시작하지 않은 연습생 A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지장만 찍고 구경조차 못한 계약서 한 장이었다. 이 기막힌 상황은 비단 그만의 이야기일까.
"계약서를 안 줍니다"…시작부터 '유령 회사'와 불공정 계약
A씨는 최근 한 연예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계약 과정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소속사는 A씨가 지장을 찍은 계약서를 교부해주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에 인터넷으로 회사를 검색해 본 A씨는 더 큰 충격에 빠졌다. 국세청 홈택스에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유령 회사'였던 것이다.
수익분배 비율도 문제였다. 통상 신인에게 유리한 7:3이나 8:2 배분이 많은 업계 관행과 달리, A씨가 6을 가져가는 6:4 구조였다. 불리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계약서 미교부와 미등록 사업자라는 찝찝함이 더해져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A씨는 "찝찝한 게 한두 개가 아니네요"라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해지하면 3년간 활동 금지"…무효 가능성 높은 '독소조항'
결정적으로 A씨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것은 독소조항이었다. 계약서에는 "계약 해지 후 3년 이내 타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경업금지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아직 어떤 투자나 활동도 없었던 신인에게 3년의 족쇄를 채운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충분한 대가나 합리적 이유 없이 연습생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경업금지 조항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해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A씨가 이런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따져 묻자, 회사는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소송을 걸겠다"며 오히려 A씨를 압박했다.
법조계 만장일치 "위약금 없는 해지 가능"…법적 근거는?
법률 전문가들은 A씨의 사연에 대해 한목소리로 "위약금 없는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핵심 근거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위반이다.
해당 법 제7조는 계약 당사자가 서명한 계약서를 서로 한 부씩 주고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법률에 따른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법률은 계약 당사자 간의 권리 보호를 위해 계약서 교부를 명시하고 있지만, 이 회사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조차 지키지 않은 셈이다.
법률사무소 조이의 윤관열 변호사는 "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한 것은 계약 당사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라며 "계약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선의 김우중 변호사 역시 "사기 또는 착오로 인한 계약 취소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체크리스트] '노예 계약' 의심될 때, 이렇게 대응하라
전문가들은 A씨가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할 방법이 충분하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대응을 조언했다.
1.내용증명 발송: 계약서 미교부, 불공정 조항 등 회사의 위법 행위를 근거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담은 내용증명을 발송한다.
2.관계 기관 신고: 문화체육관광부(계약서 미교부), 국세청(사업자 미등록), 공정거래위원회(불공정 계약) 등 관계 기관에 회사의 위법 행위를 신고해 압박한다.
3.증거 확보: 회사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문자 메시지 등 모든 소통 기록을 보관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회사 측의 소송 위협에 겁먹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법적으로는 A씨가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으므로 차분하게 증거를 확보하며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K팝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이처럼 청년들의 꿈을 담보로 한 악덕 기획사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제2, 제3의 A씨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계약서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데뷔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계약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미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