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주는 국수도 맛있게 먹었잖아!" 한수원 현수막, 모욕죄 처벌은 어렵다
"무료로 주는 국수도 맛있게 먹었잖아!" 한수원 현수막, 모욕죄 처벌은 어렵다
경주 시민 조롱했지만, 처벌 어려운 이유

지난 15일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가 경주 시내 곳곳에 부착했던 현수막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이번 벚꽃마라톤 때 월성본부가 무료로 주는 국수도 맛있게 먹었잖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경주 시내에 내건 현수막이 시민들의 자존심에 불을 지폈다. 주민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조롱 섞인 문구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한수원은 현수막을 게시한 지 2시간 만에 철거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민들은 모욕감을 느꼈지만, 이 감정이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지난 15일,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는 경주 시내 10여 곳에 홍보 현수막을 설치했다. 현수막에는 "5년 동안 월성본부가 경주시 지방세로 2,190억을 냈다지요?", "경주시의 자랑 월성원자력본부" 등 문구와 함께 문제의 "국수도 맛있게 먹었잖아!"라는 표현이 담겼다.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에 시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민석 국무총리까지 나서 "너무 모욕적"이라며 "주민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소통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한수원 측은 "발전소가 지역과 함께한다는 내용을 재치있게 홍보하려 했으나 시민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성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전대욱 사장 직무대행의 공식 사과로 이어졌다.
모욕죄는 성립할까?
시민들이 느낀 모욕감은 법적으로 모욕죄 처벌이 가능할까?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 요건, ①공연성, ②모욕적 표현, ③피해자의 특정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번 사안은 세 번째 요건인 '피해자의 특정성'에서 발목 잡힐 가능성이 크다.
- 공연성 (O): 현수막이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시내 10여 곳에 걸렸으므로 공연성은 명백히 충족된다.
- 모욕적 표현 (△): "국수 먹었잖아"라는 반말조의 문구는 시민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묘사하며 경멸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볼 소지가 충분하다.
- 피해자의 특정성 (X): 하지만 모욕죄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해야 성립한다. 판례는 '집단표시에 의한 모욕'의 경우, 그 집단에 속한 개개인까지 비난 정도가 미쳐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번 현수막 대상은 '경주 시민'이라는 매우 큰 집단이다. 따라서 A라는 특정 시민이 "저 현수막 때문에 내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하기에는 비난 정도가 희석된다.
명예훼손도 어려워…형사처벌과 윤리적 책임은 별개
명예훼손죄 적용 역시 어렵다. 명예훼손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현수막에 "2,190억을 냈다"거나 "국수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적시되긴 했지만, 이 내용이 경주 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수원의 기여를 강조하는 내용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이번 현수막 사태는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법의 심판을 피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이 시민과의 소통에서 보인 권위적이고 부적절한 태도는 형사 책임과 별개의 도의적·윤리적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