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용의자로 몰렸던 故 윤동일씨, 33년 만에 '무죄'…판결문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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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연쇄살인 용의자로 몰렸던 故 윤동일씨, 33년 만에 '무죄'…판결문 살펴보니

2025. 11. 05 12:0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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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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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불법 구금·가혹행위 속 허위자백"

피해자도 "범인 아니었다" 결정적 증언

윤동일 씨 무죄 선고 후 취재진에 입장 밝히는 친형 동기 씨 모습. /연합뉴스

1990년, 19살 故 윤동일씨의 삶이 무너졌다. '이춘재 연쇄살인 9차 사건'(13세 A양 강간살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경찰은 윤씨를 인근에서 발생한 또 다른 강제추행 사건(B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했다. 수사 과정에서 윤씨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사건과 10여 건의 성범죄까지 "내가 했다"고 허위 자백했다.


윤씨는 결국 B씨 사건에 대한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33년, 법원이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수원지방법원 제15형사부(재판장 정윤섭)는 지난 10월 30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윤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33년 만에 누명을 벗었지만, 피고인 윤씨는 이미 199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춘재 수사 중 용의자로 지목

재판부는 윤씨가 범인으로 몰린 과정을 주목했다. 1990년 11월, 화성 일대에 이춘재 연쇄살인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경찰은 9차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인근에서 B씨가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범인의 옷이 H사 직원 옷과 유사하다"는 이유와 "윤씨가 평소 소행이 좋지 않다"는 제보만으로 그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법원의 판단 ①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

윤씨의 자백은 유죄의 핵심 증거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자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경찰은 1990년 12월 15일 오후 3시경 윤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했다. 그리고 구속영장이 집행된 18일 밤 11시 50분까지, 무려 72시간 이상을 경찰서 지서 숙직실, 형사계 보호실 등 외진 곳을 돌며 조사했다.


재판부는 이를 "사실상의 강제연행"이자 "불법체포·구금"이라고 못 박았다. 당시 19세 사회초년생이던 윤씨가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평일에 무단결근까지 하며 자발적으로 조사에 응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혹행위도 있었다. 당시 변호인은 법정에서 "피고인이 '마대 자루를 씌우고 너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피고인의 형도 "5일 동안 잠을 안 재운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법원의 판단 ② 궁지에 몰린 허위 자백

과거 대법원은 "경찰에서 고문당했어도, 검찰 자백은 임의성이 있다"며 유죄를 확정했다. 하지만 재심 재판부는 이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윤씨는 검찰 1회 조사에서도 "경찰한테 얻어맞던 것이 생각나 너무 무서웠다"며 이춘재 9차 사건 혐의를 허위자백했다. 재판부는 "경찰의 강압수사로 인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검찰에서도 계속됐다"고 판단했다.


특히 윤씨가 살인 혐의는 부인하면서 강제추행 혐의만 인정한 대목이 결정적이었다. 재판부는 이것이 유죄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궁지에 몰린 나머지" 나온 허위자백이라고 봤다.


판결문은 "피고인이 자신을 살인범으로 확신하는 수사기관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이 사건 범행만이라도 인정해야 자신의 말을 믿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형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강제추행이라는 누명을 스스로 뒤집어썼다는 의미다.


법원의 판단 ③ "그 사람 아니에요" 피해자의 결정적 증언

결정적으로, 강제추행 피해자의 증언이 윤씨의 편에 섰다. 33년 만에 법정에 선 피해자는 "범인은 중학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작고 왜소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는 "검사실에서 윤씨를 처음 보았는데, 내가 알던 범인과 전혀 다른 사람이 용서를 구해서 어리둥절했다"며, 수사기관에서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이 범인의 인상착의를 상세히 기록하지도 않고, 피고인 한 명만을 보여주는(단독 대질) 방식으로 범인식별 절차를 진행했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백은 임의성이 없고, 피해자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판결을 마치며 "고인이 되신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많은 고통을 받았던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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