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비 대신 내줬더니 잠적… 믿었던 지인의 배신, 내 돈 찾을 길은
변호사비 대신 내줬더니 잠적… 믿었던 지인의 배신, 내 돈 찾을 길은
민사소송 후 법원 통해 로펌에 자료 요구해야
형사고소는 신중히 접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A씨의 곤경은 2023년 3월, 한 통의 부탁에서 시작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변호사 비용을 내야 하는데 사정이 급하다”며 A씨에게 신용카드를 빌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A씨는 지인을 믿고 선뜻 카드를 건넸고, 지인은 한 로펌에서 수백만 원을 결제했다. “곧 갚겠다”던 지인은 약속한 날이 되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전화기는 꺼져있고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A씨는 결제가 이뤄진 로펌에 직접 연락해 “누가, 어떤 용무로 결제했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로펌의 대답은 단호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알려줄 수 없다.” A씨는 카드 명세서를 손에 쥐고도, 정작 돈을 쓴 당사자가 지인임을 증명할 길이 막막해졌다.
개인정보 벽에 막혔는데…방법 없나
A씨의 사례처럼 개인이 기업이나 기관에 특정인의 정보를 요구할 때 개인정보라는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들은 개인이 정보를 얻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법원’을 통하는 것이다. 서아람 변호사(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뒤 법원에 ‘사실조회 신청’을 통해 해당 카드 결제 건의 의뢰인 성명, 계약일자 등의 자료를 회신하도록 하는 절차가 가장 확실하다”고 조언했다.
괘씸한데 사기꾼으로 고소할까?…변호사들이 신중론 펴는 이유
돈을 떼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사기죄’ 고소다. 지인을 사기죄로 고소하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해 지인의 소재를 파악하고, 결제 내역 등 증거 확보도 용이해질 수 있다.
박지영 변호사(법무법인 신의)는 “채무자가 처음부터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채권자를 속여 카드를 빌렸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러 변호사들은 형사 고소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대섭 변호사(모두로 법률사무소)는 “처음에는 갚으려 했으나 나중에 사정이 어려워져 갚지 못하는 단순 채무불이행일 수 있다”며 “섣불리 사기죄로 고소했다가 ‘혐의없음’ 처분이 나오면 시간만 낭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 고소는 상대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지만, 돈을 돌려받는 직접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A씨처럼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면, 형사 절차의 불확실성에 기대기보다 더 확실하고 직접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변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바로 ‘민사소송’이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알아도 OK
변호사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은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이라는 민사 절차다. 지인의 주소나 주민등록번호를 몰라도 소송이 가능하다.
박우진 변호사(법무법인 율천)는 “상대방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등 일부 정보만으로 소송을 시작할 수 있다”며 “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보정명령을 통해 통신사나 금융기관에 사실조회를 신청해 인적사항을 확보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으면, 이를 ‘집행권원(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권리)’으로 삼아 지인의 재산을 추적하고 압류할 수 있다. 계좌, 급여, 부동산 등에 대한 강제집행을 통해 실질적인 채권 회수에 나서는 것이다.
한편, 신용카드를 타인에게 빌려주는 행위 자체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으로, 카드 명의자 역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