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사기당했는데 '대포통장 주인'이 연락…돈 받을 수 있을까?
중고거래 사기당했는데 '대포통장 주인'이 연락…돈 받을 수 있을까?
피해자는 합의 원하지만…변호사들 '섣부른 합의는 금물, 형사고소 유지하고 민사소송 병행해야'

중고 사기 피해 시 대포통장 명의자와 섣불리 합의하는 것은 위험하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거액의 중고거래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자신도 사기 조직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대포통장' 명의주가 연락해오면서, 피해 회복을 위한 복잡한 법적 셈법이 시작됐다.
인터넷 중고거래로 거액을 날린 A씨. 돈을 부치자마자 판매자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착오송금반환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고,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니 이미 같은 가해자로 인한 피해자가 많아 경찰서에 사건이 병합됐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장까지 냈지만, 수많은 피해자 탓에 수사관 배정조차 감감무소식이었다. 사기를 당한 지 한 달,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기꾼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더치트'에 피해 사실을 올렸다.
며칠 뒤, A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돈이 입금된 통장의 주인이었다. 그는 "나 역시 사기 조직에 속아 인터넷뱅킹 명의와 면허증을 넘겼다"며 "내 통장이 이런 범죄에 쓰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경찰에서 연락이 오면 조사를 받고 죗값을 치르겠다"고 덧붙였다.
A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장 돈이 급한데, 사기 범죄에 연루된 통장 주인과 합의라도 해서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 걸까.
"합의해도 처벌"…대포통장 주인, 정말 몰랐을까?
변호사들은 A씨의 절박한 심정에는 공감하면서도 '섣부른 합의'는 위험하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법률사무소 가호의 이진채 변호사는 "사기는 합의해도 처벌을 받는 범죄"라며 "A씨를 위해서 형사고소를 유지하고 별도 민사소송도 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통장 명의자의 주장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법조계에서는 설령 명의자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자신의 통장이나 카드를 타인에게 넘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로티피 법률사무소의 최광희 변호사는 "통상 대포통장 주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되는데 이 사람들도 돈이 없는 경우가 많아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좀 어려울 것"이라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짚었다.
더 큰 문제는 통장 명의자가 단순 법규 위반을 넘어 '사기'의 공범으로 인정될 가능성이다. 법무법인 공명의 김준성 변호사는 "통장 명의자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만 처벌받는다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며 "사기 또는 사기방조로도 형사처벌을 받아야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통장 주인이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통장을 넘겼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민사상 배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섣부른 합의는 금물"…피해 회복, 두 갈래 길
전문가들은 A씨가 돈을 돌려받기 위해선 두 가지 절차를 모두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는 현재 진행 중인 형사고소를 끝까지 유지하며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다. 김경태 법률사무소의 김경태 변호사는 "대포통장 명의자의 진술은 사기범 검거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므로, 이 내용을 수사기관에 즉시 전달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통장 명의자와의 접촉 사실이 오히려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둘째는 형사 절차와는 별개로 민사소송을 준비하는 것이다. 통장 명의자와의 합의가 불발되거나, 합의하더라도 전체 피해액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법무법인 어진의 신영준 변호사는 "형사적으로 합의해서 일부라도 돌려받으면 가장 좋으나, 합의가 어려우면 민사적인 절차도 고려해야 한다"며 "대포통장주에 대한 가압류 절차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상대방의 재산을 미리 묶어두어 승소 후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합의하려면? "변호사 통해 지급능력 확인부터"
그럼에도 A씨가 통장 명의자와 합의를 시도하고 싶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김경태 변호사는 "명의자가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더라도, 실제 피해금 반환 능력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합의를 진행하더라도 반드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합의 과정에서는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선, 합의금이 전체 피해액 중 일부라는 점과 주범인 사기 조직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내용을 합의서에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 섣불리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었다가 주범으로부터 배상받을 기회마저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합의 내용은 반드시 공증을 받아 법적 효력을 확보해두는 것이 안전하다.
결국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하면, 대포통장 명의자와의 합의는 피해 회복의 끝이 아닌 시작점으로 봐야 한다. 복잡한 법적 절차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형사 고소 유지 ▲민사소송 준비 ▲신중한 합의 추진이라는 세 가지 전략을 동시에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