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자보에 쓴 10글자, 재물손괴죄일까?
대학 대자보에 쓴 10글자, 재물손괴죄일까?
우울증 앓던 학생의 충동적 낙서…법조계 “처벌 가능” vs “기소 낮아”

우울장애를 앓는 대학생이 정치 현안 대자보에 반대 의견을 적어 재물손괴죄 처벌 위기에 놓였다. / AI 생성 이미지
정치 현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학교 대자보에 적었다가 재물손괴죄로 처벌받을 위기에 놓였다. 수년간 앓아온 우울장애로 충동을 참지 못했다는 A씨.
학교 허가 없이 부착된 게시물에 볼펜으로 쓴 10자 내외의 글씨를 두고,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실제 형사 처벌로 이어질지를 놓고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순간의 충동이 부른 '재물손괴' 논란
사건은 한 대학생의 온라인 법률 상담에서 시작됐다. A씨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담긴 대학교 정문의 대자보 두 장에 충동적으로 반대 의견을 적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년 간 앓아온 우울장애의 증세가 근래 들어 재차 심해지고, 이로 인해 자제가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씨가 볼펜으로 작게 쓴 글자는 10자 남짓이었고 특정인에 대한 비방은 없었다. 심지어 해당 대자보는 학교 측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게시물이었다. 전과가 없는 A씨는 재물손괴죄가 성립한다면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일지, 무혐의나 합의 가능성은 없는지 물으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명백한 손괴" vs "기소 가능성 낮아"…엇갈린 전문가 진단
A씨의 사연에 대한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은 명확히 갈렸다. 경찰 수사 강의 교수 출신인 송재빈 변호사는 처벌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송 변호사는 “대자보에 낙서하는 행위는 손괴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며 “명백한 증거관계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부정하는 행위는 처벌의 수위를 높일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혐의가 인정될 수 있는 만큼, 수사 초기부터 합의 등 감경 요소를 입증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반면 대한변협 등록 형사전문 김경태 변호사는 “기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라고 상반된 견해를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낙서가 경미하고 허가받지 않은 대자보라는 점, 우울장애로 인한 충동적 행동이었다는 점을 들어 불송치나 기소유예 처분 가능성을 높게 봤다.
경찰 경제팀 출신의 최성현 변호사는 “초범이며 피해 정도가 경미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소유예 또는 약식명령(벌금형) 정도가 예상됩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자보를 게시한 측과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불기소처분을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라고 덧붙여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법원 판례로 본 '효용 침해', 판단 기준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A씨의 행위가 재물손괴죄의 핵심 요건인 ‘효용을 해한’ 경우인지 여부다.
대법원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파괴하는 것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물건 등의 구체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효용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기준에 따라 법원은 건물 벽면에 낙서를 한 행위를 재물손괴로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낙서가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대구지방법원은 석축에 경계 표시를 위해 낙서한 사안에 대해 “이 사건 낙서가 이 사건 석축 전체 중 차지하는 범위나 위치, 표시 내용 등에 비추어 이 사건 낙서가 이 사건 석축의 미관을 해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의 경우, 대자보의 주된 기능인 내용 전달을 완전히 막지는 않았지만, 타인의 저작물에 글씨를 더해 그 가치를 훼손했다고 볼 여지가 있어 법적 판단이 까다로운 경계선에 있는 셈이다.
수사 초기 대응이 운명 가른다…'진단서·합의'가 관건
비록 의견은 갈렸지만, 전문가들은 만약 수사가 시작된다면 초기 대응이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송재빈 변호사는 “형사사건의 경우 수사 초기 즉 경찰수사단계 대응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라며 변호사의 조력을 통한 적극적인 대응을 권했다.
재물손괴죄는 피해자와 합의해도 처벌이 가능한 범죄지만, 실무상 합의 여부는 기소유예 등 관대한 처분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결국 A씨의 충동적인 10글자가 실제 형사처벌로 이어질지는, 수사 과정에서 우울장애 진단서 등을 통해 충동성을 입증하고 피해자와 진심으로 합의하려는 노력을 보이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