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방어권' 내세워 윤중천 구속 기각한 법원...본질은 사법농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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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방어권' 내세워 윤중천 구속 기각한 법원...본질은 사법농단 방어?

2019. 04. 22 19:35 작성
윤여진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aftershock@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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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열 영장전담판사 "구금 필요성 인정하기 어려워"

수사 개시 문제 삼으며 별건→본류 수사 방식에 '제동'

사법농단 수사 당시 '피고인 판사'의 방어논리와 비슷

지난 19일 밤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차량에 탑승한 건설업자 윤중천(58)씨=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C) 저작권자 연합뉴스

김학의(63·사법연수원 14기) 전 법무부 차관에게 뇌물을 건넨 의혹을 받는 윤중천(58)씨의 사기 혐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개인 비리로 피의자를 구속한 뒤 압박을 줘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은 검찰이 해온 통상의 뇌물 수사 절차라는 점에서 법원의 이번 결정은 이례적이다. 영장 기각의 명분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지만 실제는 사법농단 수사 이후 검찰에 각을 세운 법원의 반격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공갈 혐의로 열린 윤씨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마치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신 부장판사가 이날 밝힌 기각 사유는 영장전담판사가 평소 영장을 기각할 때 관행적으로 밝힌 사유와 상당히 다르다. 법원은 보통 영장을 내주지 않을 때 그 이유로 ①범죄가 소명되지 않는다 ②도망의 염려가 없다 ③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것 중 두 가지를 골라 언론에 공개한다.


하지만 이번 영장 기각 사유는 상당히 색다르다. 신 부장판사는 “구금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총 일곱 가지를 들었다. 여기엔 ①과 ②가 포함돼 있다. 보통 사건에서 보기 어려운 구속 기각 사유는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다섯 가지다.

 

◇ 법원의 반격 1-법적 절차를 준수해라

먼저 법적 절차를 문제 삼으며 제기한 기각 사유는 ❶“피의자 체포 경위 및 체포 이후 수사 경과”가 있다. 검찰은 구속 청구 48시간 전인 지난 17일 윤씨를 체포했다. 당시 수사단은 윤씨를 상대로 참고인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고 바로 강제수사에 착수해 여러 궁금증을 낳았다.

 

검찰은 체포 직후인 17일 오후 “윤씨에게 출석 요구를 하진 않았지만, 출석에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는 점”을 소명해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법원은 사실상 윤씨가 도주할 가능성이 있을 때만 집행하라는 조건부 영장을 내준 것인데, 검찰이 이를 어긴 셈이다.

 

◇ 법원의 반격 2- 별건은 수사하지 마라

신 부장판사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수사의 목적이다. 이와 관련한 기각 사유는 ❷“본 사건의 수사개시 시기나 경위”와 ❸“영장청구서 기재 범죄 혐의의 내용과 성격”이다. 신 부장판사가 법원식 표현으로 어렵게 설명한 기각 사유를 해석하면 이 정도다.

 

검찰 수사단의 이름인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수사의 핵심은 과거사위가 권고한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다. 하지만 검찰은 뇌물공여자로 지목된 윤씨를 압박하기 위해 별건인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여기엔 김 전 차관에게 성상납을 통해 뇌물을 줬다는 자백을 받아내려는 검찰의 의도가 짙게 숨어있다. 별건 수사는 전형적인 피의자의 인권침해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출신 최진녕 법무법인 이경 변호사는 22일 로톡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사실상 이번 수사단 이름은 ‘김학의 수사단’으로 과거사를 수사해야 하는데, 윤중천씨 피의사실은 현재 사실과 관련된다”며 “법원이 별건을 가지고 왜 수사하냐고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의 반격 3-피의자를 예단하지 마라

신 부장판사는 검찰의 수사 목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근거로 윤씨의 변론을 내세웠다. 이점을 설명한 기각 사유가 ❹“피의자 변소의 진위 확인 및 피의자 방어권 보장 필요성”과 ❺“수사 및 영장심문 과정에서 피의자의 태도”다. 마찬가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윤씨 측은 영장실질심사에서 “김 전 차관과 관련이 없는 사기 혐의로 영장을 청구한 것은 검찰의 무리한 별건 수사”라고 변론했다. 실제 윤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다 피의자 신분이 돼 체포된 것이 아니다. 체포에 앞서 검찰이 소환조사를 진행한 적이 없어 윤씨가 수사에 비협조적일 것이라는 것은 의심일 뿐이다. 판사의 질문에 윤씨가 답하는 태도를 보면 향후 검찰 수사에 협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 윤중천 영장 기각은 사법농단 수사 복사판

영장전담판사가 피의자의 방어권을 내세우는 이같은 모습은 사법농단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지난해 법원의 내부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앞서 김시철(53·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1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관해 법원 가족에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A4 용지 48쪽 분량의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2015년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았었다.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와 재판 거래를 했다고 검찰이 지목한 대표적 사례다.

 

김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이미 실효된(효력을 다한) 영장을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건 명백하게 위법한 수사”라고 검찰을 공개 비판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11일 법원 전체 직원 이메일 계정을 압수했다. 문제는 18일이 지난 뒤 검찰이 새로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김 부장판사의 이메일만 재차 압수했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 215조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동일한 장소를 압수수색하려면 법원이 새 영장을 발부해줘야 한다. 


◇ 법원의 진짜 목적은 사법농단 방어?

이번에 신 부장판사가 내놓은 영장 기각 사유는 향후 사법농단 재판에서 피고인으로 넘겨진 판사들의 방어 논리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사법농단 수사의 본류인 '재판 거래'와 '판사 블랙리스트' 혐의가 아닌 다른 불법사유로 재판에 넘겨진 판사들이 별건 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법농단이 본격화했던 지난 2014년 2월부터 2년 동안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한 유해용(53·19) 전 수석재판연구관이 꼽힌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와 대법관들을 잇는 '고리'로 유 전 연구관을 지목하고 별건으로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법관을 퇴직하면서 연구관 시절 자료의 사본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것이 '공무상 기밀누설'이란 것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유 전 연구관은 검찰이 별건수사를 통해 자신을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대법원을 사실상 '봉인해제'하기 위해서 명분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검찰로서는 유 전 연구관이 복사한 '대법원 사건 검토보고서'를 확보하는 게 수사의 지름길이었다.


이에 법리에 능한 유 전 연구관은 "압박감을 느꼈다"며 가지고 있던 법원 내부 문서를 모두 파쇄했다. '자기 증거인멸'은 형법상 범죄가 아니다. 법원도 "사본은 공무상 기밀이 아니다"라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지미 변호사는 전화통화에서 “별건 수사가 안 된다는 건 사법농단 수사 전에는 교과서에만 통용되던 논리였다”면서 “검찰이 그동안 별건으로 영장을 청구했을 때 법원이 다른 사건에서도 제동을 걸어왔느냐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어 "아주 역설적이게도 형사소송법 원칙들이 지켜지면서 발전하는 건 맞다"면서도 "그러면 이게 사법농단 피고인 판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인지,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적용한 건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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