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한 삽화작가 명단 올려둔 계정,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아닐까? 변호사와 따져봤다
잠적한 삽화작가 명단 올려둔 계정,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아닐까? 변호사와 따져봤다
"마감 앞두고 연락 끊겨" "상습적으로 마감 어겨" 일러스트레이터 고발 계정 등장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작가명까지 공개했는데⋯명예훼손 문제 되지 않을까?
변호사 "처벌 가능성 작다⋯사이버 명예훼손 성립요건 중 '비방할 목적' 인정 안 될 것으로 보여"

마감을 하지 않고 잠적하거나, 잦은 지각을 하는 삽화작가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트위터 계정이 생성됐다. 계정 관리자는 "업계 내 피해를 줄이기 위한 취지"라는데,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행위는 아닐까?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트위터에 웹소설 삽화작가(일러스트레이터)들을 고발하는 계정이 생겼다.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을 공개하겠다며 만들어진 계정이다.
웹소설 작가 입장에선 글만큼이나, 독자에게 바로 보이는 표지 그림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독자와 소설을 만나게 해주는 '얼굴'과 마찬가지인 셈인데, 정작 작업을 맡긴 삽화작가가 마무리 짓지 않고 사라지거나 마감 기한을 지키지 않는다면 작가의 입장에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
이에 해당 계정은 평소 글 작가와의 계약을 자주 어기거나 마감을 앞두고 연락을 끊었던 작가들을 제보받아 밝히고 있다. 자신도 웹소설 작가라고 밝힌 해당 계정 운영자는 "비슷한 문제를 빈번하게 일으키는 사람을 밝혀둬 피해를 줄이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이러한 계정이 생기자 누리꾼들도 갑론을박을 벌였다. "여러 번 문제를 일으킨 작가라면, 이름이 알려져야 맞다"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공개하는 건 법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러한 폭로 계정에 대해 변호사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일명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처벌된다. 이때 ①공연성 ②특정성 그리고 ③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摘示: 짚어서 보여주는 일)해야 한다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④비방의 목적도 있어야 한다.
해당 계정은 트위터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①)에서, 작가의 활동명(②)을 언급하며 어떤 문제(③)가 있었는지 썼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처벌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④비방의 목적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계정은 글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다른 작가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운영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공익'을 주장하며, 비방의 목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다.
관련해 지난해 대법원은 "'비방할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라는 방향에서 상반되므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고 봤다.
이에 대해 유승 종합법률사무소의 신동희 변호사는 "흔히 명예훼손 사건에선 공공의 이익과 비방의 목적이라는 가치가 상충하곤 한다"면서 "이럴 때 공공의 이익이 크다면, 우리 법원은 비방의 목적보다는 공익을 위한다는 주장 쪽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법률 자문

이어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공공의 이익'에서 말하는 공공은 사회 전반일 필요는 없다"며 "업계나 특정 집단의 이익도 공익 범주에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업계 내 부당한 사례들을 고발하겠다'는 취지라면 이러한 비방할 목적보다는 공익성이 인정될 것"이라고 신 변호사는 말했다. 작가의 지각이나 연락 두절로 작가와 출판사가 입게 되는 피해를 막으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태연법률사무소의 김태연 변호사도 "근거를 내세워서 잘못한 행동을 비판했다면, 우리 법원은 비방보다는 공익적인 목적이 더 크다고 본다"고 전했다.
해당 계정은 제보에 따라, 피해 사실을 정리해 공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비판에 나선 거라면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거란 취지였다.
만일 이 계정에 허위 내용이 게시됐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허위 사실이 다소 포함돼 게시됐더라도, 계정 운영자가 처벌될 가능성은 작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은 "전체 사실에서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으로 합치된다면, 세부적으로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대법원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사건을 다루며 "공공연하게 드러낸 사실이 거짓이라도, 그 사실이 거짓임을 인식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글을 올렸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는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7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