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입자 구해야 보증금 준다”는 집주인…내 돈 지키는 법
“다음 세입자 구해야 보증금 준다”는 집주인…내 돈 지키는 법
전문가들 “임차권등기명령으로 권리 확보 후 소송…지연이자는 물론 변호사 비용까지 청구 가능”

계약 만료 후 '다음 세입자를 구해야 보증금을 준다'는 집주인의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다음 세입자가 구해질 때까지 보증금은 못 돌려줍니다.”
계약 만료를 코앞에 둔 세입자는 집주인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고 이사 가는 것은 당연한 권리지만, ‘배 째라’ 식으로 나오는 집주인 앞에서 세입자는 막막하기만 하다. 전세 사기 공포가 만연한 요즘,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는 이들을 위해 법률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그 해법을 짚어봤다.
서울의 한 다가구주택에 거주하는 임차인 A씨의 계약 만료일은 오는 2월 7일이다. A씨는 법에서 정한 대로 계약 만료 2개월 전에 집주인에게 이사 의사를 수차례 밝혔다. 문자 메시지와 통화 기록 등 명확한 증거도 남겨두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다음 임차인이 구해질 때까지 보증금은 못 돌려준다”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A씨는 하루라도 빨리 다음 세입자를 구하려는 마음에 자신의 돈을 들여 집을 수리하는 데 협조했다. 결로로 인한 곰팡이 때문에 도배와 화장실 수리를 하는 동안 집을 비워주었고, 직접 부동산 정보 사이트와 대학 커뮤니티에 전세 매물을 올리며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집주인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A씨는 법적 절차를 밟기로 결심했다.
새 임차인 구해야 보증금 반환? 법적 근거 ‘전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은 집주인의 주장이 법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음 임차인을 구해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주장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면 집주인은 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법무법인 반향의 유선종 변호사는 “계약 만료일을 지나서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으면 지연이자 청구가 가능하다”고 명확히 했다.
이사는 가야 하는데…내 권리 지키는 첫 단추 ‘임차권등기명령’
당장 이사를 해야 하는 A씨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대항력’ 확보다. 대항력이란 임차인이 제3자에게 임대차 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리로, 이사를 가버리면 이 권리를 잃게 돼 보증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임차권등기명령’이다.
법률사무소 율생의 천찬희 변호사는 “이사를 하기 위해서는 대항력을 위해 임차권등기를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대차가 끝난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법원에 신청해 등기부등본에 자신의 임차권을 기록하는 제도다.
등기가 완료되면 세입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기존 주택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보증금을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변제받을 권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 절차에 들어간 비용은 추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배 째라’ 집주인에게 이자까지 받아낼 수 있을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은 집주인에게는 원금뿐만 아니라 지연이자까지 청구할 수 있다. 법무법인 인화의 김명수 변호사는 “소송에서 지연이자를 청구하려면 이사한 다음 날부터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사 다음 날부터는 연 5%의 법정 지연이자가 붙고,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소장이 집주인에게 송달된 다음 날부터는 연 12%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늦게 돌려주는 만큼 집주인의 책임이 가중되는 셈이다.
최후의 수단 ‘가압류’와 ‘경매’, 나 홀로 가능할까
만약 집주인이 재산을 빼돌리거나 정말로 돈이 없어 지급을 못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A씨는 집주인의 부동산을 ‘가압류(재산을 임시로 묶어두는 조치)’하고 ‘강제경매’에 넘기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승소 판결을 받으면 이를 통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부터는 법률 지식이 없는 개인이 혼자 진행하기엔 벅차다. 라미 법률사무소의 이희범 변호사는 “소송 및 강제집행은 변호사들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비용 절감을 위해 직접 소송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법률사무소 금옥의 신현돈 변호사는 "변호사 비용이라도 아낀다는 차원에서 나홀로 소송으로 진행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라고 현실을 짚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나 홀로 소송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법률사무소 율생의 천찬희 변호사는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시간이 지체될 수 있으며,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여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다행히 승소할 경우 변호사 선임 비용 등 소송에 들어간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집주인에게 청구(소송비용액확정신청)할 수 있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결국 A씨와 같은 상황에 놓인 임차인이라면, 계약 만료 즉시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자신의 권리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후 내용증명 발송 등을 통해 집주인을 압박하고, 그럼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지체 없이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에 나서는 것이 내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