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없애준 내 마법의 엑셀, 퇴사할 때 지웠더니 업무방해?"
"야근 없애준 내 마법의 엑셀, 퇴사할 때 지웠더니 업무방해?"
중소기업 5년 차 직원, 개인 시간 쪼개 만든 엑셀 자동화 툴 삭제 후 퇴사
법적 승자는 누구

퇴사한 직원이 자신이 만든 자동화 엑셀 서식을 삭제한 뒤 떠나자, 회사가 업무방해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셔터스톡
8시간 걸리던 결산 업무를 30분으로 단축해 준 '마법의 엑셀'을 지우고 퇴사했다면, 이 직원은 범죄자일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5년 차 중소기업 직원의 퇴사 후기가 법적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 직원은 연차 수당과 성과급 문제로 회사와 치열한 갈등을 빚자, 자신이 3년간 틈틈이 시간을 쪼개 만든 엑셀 자동화 서식을 모두 삭제한 뒤 퇴사했다.
원본 데이터와 공식 인수인계 문서는 그대로 남겼지만, 회사는 예전처럼 수기로 일하느라 업무 속도가 나지 않자 "업무를 마비시켰다"며 형사 고소를 예고했다.

이 엑셀 툴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쟁점은 저작권법상 '업무상 저작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우리 법은 회사의 기획 아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을 원칙적으로 회사의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직원은 "회사가 시켜서 만든 게 아니라 내 업무를 편하게 하려고 내 노하우를 쏟아부어 만든 개인 무기"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회사의 기획이나 지시가 없었고 업무 시간이 아닌 개인 시간에 자발적으로 만들었다면, 이를 무조건 회사 소유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법리적으로 직원의 독자적 창작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
고의적 삭제, '업무방해'나 '손괴'로 처벌될까
이 사건에서 회사가 예고한 형사 고소의 핵심은 '컴퓨터등손괴업무방해죄'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업무방해죄는 실제로 업무방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도 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으면 성립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결산 시간이 30분에서 8시간으로 지연된 것이 업무방해 위험에 해당하는지를 따지기 전에,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논리적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삭제된 엑셀 툴이 타인(회사)의 전자기록에 해당하는지가 먼저 확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대법원은 "직원이 혼자 작성한 파일이라도 회사가 그 효용을 지배·관리하고 있었다면 무단 삭제 시 전자기록등손괴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유·무죄 팽팽⋯섣부른 단정은 금물
그렇다면 이번 사안은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섣불리 유·무죄를 단정 지을 수 없는 치열한 쟁점 사안이다.
유사한 퇴사자 파일 삭제 사건의 하급심 판례를 보면, "회사가 파일을 기획하거나 작성을 지시한 사실이 없어 회사 소유의 전자기록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가 공식적으로 인지·관리하지 않았더라도, 해당 파일이 회사 컴퓨터에 저장되어 회사 업무에 상시 활용되어 왔다면 회사의 지배·관리를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로 판단한 하급심 판례 역시 다수 존재한다.
심지어 같은 사건 내에서도 파일의 성격에 따라 어떤 파일은 유죄, 어떤 파일은 무죄로 엇갈린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도의적인 비난은 피하기 어렵겠지만, 공식 인수인계 자료와 원본 데이터를 남겨두었다는 점, 회사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창작했다는 점은 직원에게 유리한 정황이다.
반면, 회사 프로그램(엑셀) 위에서 구현해 상시 업무에 활용해 왔고, 갈등 직후 보복성으로 삭제해 실제 업무 지연이 발생했다는 점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결국 법의 심판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 해당 파일에 대한 회사의 실질적인 지배·관리 여부와 삭제 당시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