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뛴다길래…" 개발 계획 없는 보전구역 땅, 속아서 비싸게 주고 산 아버지의 눈물
"값 뛴다길래…" 개발 계획 없는 보전구역 땅, 속아서 비싸게 주고 산 아버지의 눈물
시세보다 비싸게 땅을 샀다는 사실만으로는 매매취소, 사기죄 적용 어려워
얼마나 구체적으로 속였는지 '고의성' 입증하는 게 급선무

부동산 계약금을 환불하러 갔던 아버지는 도리어 거액의 대출까지 받아 가며 토지 등기를 마치고 말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산 땅은 보전관리지역으로 설정된 곳이었고 개발계획도 없던 땅. 이를 알게 된 아버지는 상심에 빠졌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아버지가 A씨에게 부동산 계약서 한 장을 내밀었다. 계약금만 5000만원인 큰 거래였다. 놀란 A씨가 아버지를 다그치니 "곧 도로도 깔리고 무조건 오르는 땅이라고 해서 계약했다"는 순진한 답이 돌아왔다. A씨는 "사기 같다"며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얼른 계약을 파기하시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렇게 A씨의 설득이 통한 줄 알았지만,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빼앗은 건 화술 좋은 사기꾼이었다. 계약금을 환불하러 갔던 아버지는 도리어 거액의 대출까지 받아 가며 토지 등기를 마치고 말았다. 심지어 사기꾼은 부족한 땅값을 빌려주는 척하며, 토지를 담보로 채권까지 설정한 상태였다.
아버지가 산 땅은 보전관리지역으로 설정된 곳이었고 개발계획도 없었다. 게다가 시세보다 4배나 비싸게 산 탓에, 다시 땅을 팔려고 하면 고스란히 빚더미에 앉는 상황이었다. A씨 아버지는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난 뒤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 A씨는 아버지를 속인 사람을 사기죄로 고소하고, 땅 매매를 취소할 수 없을지 변호사들에게 물었다.
우선 변호사들은 "아버지가 산 땅이 시세보다 비쌌다"거나 "생각했던 토지 조건과 다르다" 정도의 사실만으로는 법적 대응이 어렵다고 봤다. 민사사건에서는 당사자 간의 합의가 절대적인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도인이 'A씨의 아버지와 다 합의하고 계약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법적 구제는 어려울 수 있다.
우리 대법원 역시 토지 등을 매매할 때 목적물의 시가(가격)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해서 매매계약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본다. "시세보다 비싸게 팔았으니 무조건 사기"라는 주장은 인정되지 않는 셈이다.
법무법인 오른의 백창협 변호사는 "개인 간의 거래에서는 민법상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된다"며 "A씨의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맺은 계약이기 때문에, 매매 조건이 좋지 않았다는 정도만으로는 계약취소나 사기 고소를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①계약 당시 A씨의 아버지와 매도인 사이에 어떤 협의가 오고 갔는지 ②그 과정에서 매도인의 구체적인 기망 행위가 있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변호사들은 전했다.
이광덕 변호사 사무소의 이광덕 변호사는 "매도인이 아버지에게 땅의 지목(종류)을 속였거나, 개발 호재 등에 대해 실제 계획이 있는 것처럼 거짓으로 이야기하는 등 구체적인 기망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해냄의 조대진 변호사도 같은 의견이었다. "매도자가 A씨에게 마치 개발계획과 도로 건설 계획이 있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속이고 땅을 팔았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다"고 봤다.
법무법인 한림의 형장우 변호사는 "현재로선 민사나 형사 모두 사기의 정황을 담은 증거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며 "매도인이 토지 인근에 곧 도로가 생긴다거나, 개발계획이 발표될 것이라는 등 구체적으로 아버지를 기망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 파일이나 문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법무법인 초석 권영국 변호사는 "만약 증거 부족으로 형사고소가 어렵다면 민사소송으로 불공정한 거래행위나 사기로 인한 취소를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증거 없이 승소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권 변호사는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