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앞에서 할머니 모욕한 아내⋯그래도 명예훼손에는 해당 안 된다는데
아이들 앞에서 할머니 모욕한 아내⋯그래도 명예훼손에는 해당 안 된다는데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되려면? '공연성' 인정돼야
대법원 "가족들 앞에서 한 발언은 전파력 없어, 공연성 충족 안 된다"

A씨는 아이들도 있는 자리에서 모두가 듣도록 큰 소리로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한 게 너무 충격적이다. 아내를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고소 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코리아
"하, 당신네 어머니가 바람피운 건 알아?"
이혼 소송 중인 A씨 부부. 이혼 문제로 말다툼을 하던 중 A씨 아내의 입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이 튀어나왔다. 감정이 격해진 아내가 아이들까지 모두 있는 자리에서 'A씨의 어머니가 외도한 적이 있다'며 폭로한 것이다.
A씨는 이런 아내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뜬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지칭한 외도남은 A씨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점을 떠나서 A씨는 아이들도 있는 자리에서 모두가 듣도록 큰 소리로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한 게 너무 충격적이다.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고 생각한 A씨. 당시 상황이 담겨있는 녹음 파일을 통해 아내를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려고 한다. 변호사들과 함께 알아봤다.
변호사들은 아내에게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손자들(A씨의 아이들) 앞에서 할머니(A씨의 어머니)를 모욕한 것은 전파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한송의 류상훈 변호사는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는 공연성이 성립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판례는 공연성을 전파 가능성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즉, 손자들 앞에서 할머니를 모욕한 A씨 아내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으나, 전파 가능성이 없어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명재의 김연수 변호사는 "판례에 의하면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 명예훼손 언행을 한 경우에는 전파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따라서 아내가 A씨와 자녀들 앞에서 시어머니에 관한 발언을 했어도,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법률사무소 산성의 박현우 변호사는 "이혼 소송 중이기 때문에 아내를 압박할 목적으로 형사 고소를 할 수는 있겠지만, 명예훼손이 성립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령 명예훼손으로 처벌되더라도 소액 벌금형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례에서도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1984년 대법원은 친척들 앞에서 한 명예훼손 표현은 전파 가능성이 희박해 공연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자녀들의 혼인 관계가 파탄이 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해자가 'X년' 등의 발언을 한 경우다. 이 경우 대법원은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보기 어려워 '공연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984. 4. 10. 선고 83도49 판결)
다만 변호사들은 아내의 발언이 모욕죄나 명예훼손이 되기는 어렵지만, 이혼 소송 때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권민경 법률사무소 권민경 변호사는"A씨 아내의 폭언행위가 재판상 이혼 사유가 될 수 있고, 녹음파일은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법무법인 한송의 류상훈 변호사도 "녹음 증거가 있다면 이혼 소송 중 이를 활용해 위자료 등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