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잠적, 월세 냈다간 떼이고 안 내자니 보증금 깎일 판
집주인 잠적, 월세 냈다간 떼이고 안 내자니 보증금 깎일 판
경매 넘어간 우리집, 월세 연체와 떼일 위험 사이 줄타기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집주인이 잠적했을 때는 법원에 월세를 맡기는 '변제공탁'이 가장 안전하다. / AI 생성 이미지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집주인은 연락 두절. 이런 상황에서 월세를 계속 내야 할까?
섣불리 납부를 중단하면 ‘월세 연체’로 보증금만 깎일 수 있고, 그렇다고 꼬박꼬박 내자니 돈을 떼일 것 같아 불안하다.
변호사들은 법원에 돈을 맡기는 ‘공탁’이 가장 안전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일부는 오히려 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역공’ 전략을 제시했다. 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극과 극의 생존법을 알아본다.
"월세 53만원, 집주인 잠수에 갈 곳 잃었다"
서울 동작구의 한 다가구주택에 사는 A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2025년 3월,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45만 원, 관리비 8만 원 조건으로 입주했지만, 최근 집이 경매에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됐다.
집주인은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는 완벽한 ‘잠수’ 상태다. 이미 건물에는 다른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신청한 임차권 등기까지 있었다.
A씨는 부랴부랴 법원에 권리신고와 배당요구를 마쳤지만, 당장 매달 내야 할 월세와 관리비 53만 원이 문제다. 행방불명된 집주인의 통장에 돈을 계속 보내는 게 맞는지, 그렇다고 안 내자니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
"섣부른 납부 중단은 '독'…가장 안전한 방패는 '법원 공탁'"
전문가들은 A씨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이 '무작정 월세 안내고 버티기'라고 경고한다.
법무법인 중산 김영오 변호사는 "상담자의 경우처럼 경매 진행 중이라고 해서 월세·관리비를 무조건 “안 내도 되는” 것은 아니고, 원칙적으로는 임대차가 끝나기 전까지는 차임 의무가 남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집주인의 재정 상태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월세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월세를 내지 않고 별도 통장에 모아 두기만 하면, 법원은 이를 ‘차임 연체’로 판단해 추후 보증금에서 깎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세입자가 자신을 보호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변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변제공탁' 제도를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새올법률사무소 강원모 변호사는 "임대인 연락두절·수령곤란이면 법원 변제공탁이 가장 안전합니다(공탁하면 지급의사·이행을 객관화)"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호평 배성환 변호사 역시 "임대인이 연락을 받지 않거나 수령이 곤란한 사정이 분명하다면, 단순 적립보다는 지급의사와 지급제공을 문서로 남긴 뒤 공탁 등으로 대체이행을 검토하는 편이 안전한 경향이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월세를 법원에 맡기면 납부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받아 연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 공탁서는 훗날 소송에서 결정적 증거가 된다.
"관리비는? '실비'라면 직접 납부하고 '내용증명' 발송은 필수"
월 8만 원의 관리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A씨처럼 관리비에 수도세 등 공용 실비가 포함된 경우,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현재 세입자들이 공용 관리비를 모아 직접 납부하고 계시다면, 이는 임대인이 관리비를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건물의 주거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로 간주됩니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 임대인에게 관리비를 보내는 대신 세입자들이 직접 공과금을 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증거를 남겨야 한다.
뉴로이어 법률사무소 국진호 변호사는 "이 역시 내용증명을 통해 중단 의사를 명확히 전달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내용증명에는 '임대인의 관리 부재로 세입자들이 공용 요금을 직접 납부하며, 해당 금액은 관리비에서 상계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 두는 것이 안전하다.
"오히려 '돈 안 내고 버텨라'?…소수파의 '역공' 전략"
대부분의 변호사가 '공탁'을 통한 안전한 이행을 강조하는 가운데, 정반대의 공격적인 전략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인화 김명수 변호사는 "배당절차에서 보증금 전액을 배당받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월세 등을 지급하지 않는 방법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조언했다.
월세를 내지 않아 집주인이 명도소송을 걸어오면, 역으로 '남은 보증금을 돌려주면 나가겠다'고 맞서라는 것이다. 이미 경제적 능력이 없는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으므로, 소송에서 이겨도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이용하는 전략이다.
이는 ‘불안의 항변권’(민법 제536조 제2항) 행사로 볼 여지가 있다는 하급심 판례(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17가단115288)도 존재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원칙적으로 차임 지급 의무를 인정하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