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사용' 약속받은 진입로, 주인 바뀌더니 "안 사면 막겠다"…통행권 지킬 수 있나?
'영구 사용' 약속받은 진입로, 주인 바뀌더니 "안 사면 막겠다"…통행권 지킬 수 있나?
경매로 땅 낙찰받은 새 주인, 등기 안 된 승인서는 효력 없다 주장…법적 대응 방법은?

경매로 진입로 주인이 바뀌어 길을 막겠다고 압박해도, 해당 길이 건축법상 도로로 지정됐다면 소유자라도 동의 없이 폐쇄할 수 없다. / AI 생성 이미지
토지 개발허가를 받아 창고를 지은 A씨. 진입로로 쓸 땅의 소유주에게 '주출입도로 영구사용승인서'까지 받아 관할 시청에 제출하는 등 모든 절차를 합법적으로 마쳤다.
그런데 최근 진입로 땅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땅을 낙찰받은 새 주인 B씨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로를 사지 않으면 영업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며 "개인 소유 도로이므로 막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통보한 것이다.
등기부에는 없지만 시청에 원본이 보관된 '영구사용승인서'. A씨는 이 약속을 근거로 B씨의 위협에 맞서 계속해서 진입로를 이용할 수 있을까?
등기 안 된 '영구사용승인서', 새 주인에게는 효력 없어
결론부터 말하면, 변호사들은 등기되지 않은 사용승인서만으로는 경매 낙찰자인 새 주인에게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고 봤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등기부에 지역권 등으로 공시되어 있지 않은 영구사용승인서는 계약 당사자인 전 소유주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채권적 권리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경매는 이런 채권적 사용권을 낙찰자에게 승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쉴드 장기훈 변호사 역시 "이전 소유주와의 합의는 '채권적 권리'에 불과하여 제3자에게 대항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A씨와 전 소유주 사이의 약속일 뿐, 땅의 새 주인인 B씨는 그 약속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사용승인서가 당사자 간의 약속에 불과하다는 점 때문에 변호사들은 A씨가 B씨의 요구에 대해 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맹지'라면 법정 통행권, 허가받은 '도로'라면 동의 없이 폐지 불가
하지만 새 주인 B씨가 자기 땅이라는 이유만으로 길을 마음대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A씨가 주장할 수 있는 다른 법적 권리가 있다고 조언했다.
우선 A씨의 창고가 해당 진입로가 없이는 공로(公路, 일반 공중이 다니는 길)로 나갈 수 없는 '맹지' 상태라면 민법상 '주위토지통행권'을 주장할 수 있다.
서울종합법무법인 서명기 변호사는 "해당 토지가 창고에서 공로로 출입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라면, 민법상 주위토지통행권이 성립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법률에 의해 당연히 인정되는 권리이므로 B씨의 동의가 필요 없다.
더 강력한 근거도 있다. 법무법인 현림 윤상현 변호사는 "사용승낙서를 시청에 제출해 허가를 받았다면, 그 통로가 건축법상 도로로 지정·공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윤 변호사는 "건축법은 지정된 도로를 폐지·변경하려면 이해관계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소유자가 바뀌어도 마찬가지라고 정한다"며 "A씨 동의 없이는 도로를 없앨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시청 건축과에서 도로 지정 여부를 확인해 보라는 조언이다.
더불어 법원 판례는 토지 소유자가 자신의 땅을 타인의 통행로로 제공해 독점적 사용을 포기했고, 새 소유자(낙찰자)가 이런 사정을 알고 토지를 취득했다면 새 소유자 역시 통행을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실제 도로 막으면 '업무방해죄' 고소, '가처분'으로 신속 대응 가능
만약 B씨가 실제로 길을 막아 창고 영업을 방해한다면 A씨는 즉각적인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민사적으로는 법원에 '통행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신속하게 길을 다시 열 수 있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는 "낙찰자가 임의로 도로를 막아 영업을 방해하는 경우, '통행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즉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발생한 영업 손실에 대해서는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형사처벌 가능성도 있다. 윤상현 변호사는 "말뚝이나 펜스로 길을 차단하면 일반교통방해죄와 업무방해죄가 문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반교통방해죄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다.
변호사들은 B씨의 매수 압박에 섣불리 응하기보다, 시청과 경매 기록 등을 통해 진입로의 법적 성격을 먼저 확인한 뒤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언 법률사무소 박영재 변호사는 "새 소유주가 '막겠다'는 말을 했다면 문자 등으로 증거화해 두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