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 원하는 이유…무죄율 52%, '이웃 배심원'이 만든 역설
성범죄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 원하는 이유…무죄율 52%, '이웃 배심원'이 만든 역설
2024년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 52.3%
일반 재판의 10배 이상
피해자 사생활 집요한 공격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이하 참여재판)에서 성범죄 피고인의 무죄 선고율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사생활을 들춰 배심원의 감정에 호소하는 재판 전략이 '무죄 공식'처럼 굳어지면서 구조적 결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가 공개한 2024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참여재판을 거친 성범죄 사건의 실형 선고율은 33.3%에 그쳤다.
살인(70%)이나 강도·상해(각 50%) 등 강력 범죄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특히 성범죄 무죄율은 52.3%에 달했다. 일반 형사 재판의 무죄율이 통상 3~4%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격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조계와 피고인들 사이에서는 '성범죄 사건은 참여재판으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돈 궁해서 고소했나"⋯법정에서 벌어지는 2차 가해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재판 당일 처음 사건 기록을 접하는 구조는 피고인 측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피고인 측은 피해자가 왜 이른바 '피해자답지 못했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들거나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을 노출한다.
성범죄 참여재판에서 피해자를 대리해 온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의 서혜진 변호사는 방송을 통해 "성범죄 참여재판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를 흔드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카카오톡 메시지나 캡처 자료가 현장에 나오면 피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 측은 이런 상태를 노려 피해자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몰아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체중이 39kg까지 줄어든 피해자에게 피고인 측은 "헬스장을 등록했던데 다이어트를 한 것 아니냐", "정신과 진료는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받은 것 아니냐", "돈이 궁해서 고소한 것 아니냐"며 무차별적인 추궁을 쏟아내기도 했다.
재판부가 사건과 무관한 신문을 제지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배심원들에게는 질문의 부적절함보다 피해자가 당황해하며 대답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 더 강렬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웃 앞에서 꺼내야 하는 지옥 같은 기억⋯제도 보완 시급
배심원의 평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적 효력'에 불과하다. 하지만 재판부가 시민의 눈높이를 거스르기는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유승민 작가는 "참여재판 도입 이후 배심원 평결과 법원 판결이 일치한 사건은 93.8%에 이른다"고 밝혔다.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해 기소 문턱을 넘은 사건조차 참여재판에선 절반 이상 무죄로 뒤집히는 배경이다.
피해자에게 참여재판은 그 자체로 지옥이다. 자신의 이웃일지도 모르는 8명의 관할 구역 거주민(배심원) 앞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반복해서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혜진 변호사는 "지역 사회 주민들 앞에서 말하고 싶지 않은 내밀한 피해를 얘기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배심원들과 법정에 선다는 것 자체만으로 굉장히 불리한 게임이며, 법정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무력감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현재 법 구조상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신청하면 피해자가 강력히 거부하더라도 재판부 판단에 따라 강행될 수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참여재판 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