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험료 오를까 봐⋯20년 다닌 직원의 '산재 인정' 막은 비정한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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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험료 오를까 봐⋯20년 다닌 직원의 '산재 인정' 막은 비정한 회사

2020. 04. 09 15:10 작성2020. 04. 09 19:01 수정
박선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w.park@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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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쉼 없이 돌아가던 현장 근무⋯병가 냈더니 "그만둬라" 20년간 다닌 회사의 배신

직원의 극단적 선택에도⋯회사는 오히려 "산재 아니다"라며 이의제기

퇴직금 체불 신고하자 앙심 품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그가 사랑했던 회사

근로자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여겼던 A씨. 동료들은 '애사심 있는 순한 사람'으로 그를 기억했다. 그랬던 A씨는 그토록 사랑하던 회사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회사 때문이었다. 해당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 없는 참고용 이미지. /게티이미지코리아

20년을 근속한 근로자였다. 회사를 빠지긴커녕 병가를 사용해 본 적도 없었다. 그의 성실함은 유명했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여겼던 A씨. 동료들은 '애사심 있는 순한 사람'으로 그를 기억했다.


그랬던 A씨는 그토록 사랑하던 회사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공채 1기 자부심으로 버틴 20년, 그는 왜 회사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나

회사의 일방적인 발령으로 시작된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견디다 못해 병가를 신청했지만, 회사의 대답은 "그럴 거면 그만둬라"였다. 사무실도 없는 열악한 건설 현장에서 혼자서 버티던 A씨에게는 가혹한 대답이었다. 동료들이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떠나도 현장을 지키던 그였다.


회사에 대한 '사랑'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배신감은 A씨를 더 심한 우울증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A씨가 선택할 곳은 없었다.


A씨의 사망을 살펴본 근로복지공단(공단)은 "업무상 재해로 인한 죽음"이라 판정했다. 일 때문에 죽었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회사가 가만히 있었더라면 A씨 유가족들은 산업재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러지 않았다. "유족에게 돈을 주겠다"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이 내린 판정이 위법하므로 법원이 '돈을 주지 않도록' 바로 잡아달라는 소송이었다. A씨는 죽어서도 편안하지 못했다.


휴일 없이 365일 돌아가던 현장⋯6명이 할 일을 2명이서 해

건설회사에 다니며 공사를 관리·감독했던 A씨. 문제는 A씨가 '직원들이 제일 기피하는 곳'으로 발령을 받으며 시작됐다.


법원에 제출된 A씨 측 자료에 따르면, 애초 회사는 A씨가 당초 희망하던 곳으로 보내줄 것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이후 A씨가 수차례 변경을 요청했어도 요지부동이었다.


새로운 발령지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A씨를 괴롭혔다. 업무는 과중했고, 공사를 지휘하는 감리단은 깐깐했다. 세세한 것까지 문서로 처리하도록 했다. 결국 야근이 일상화됐다. A씨가 두 달간 보낸 서류(공문)만 68건에 달했다. 공사를 감독하면서 동시에 이 정도 규모의 서류 작업을 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현장엔 잠깐의 쉼도 허락되지 않았다. 현장은 사실상 365일 운영됐으며 휴일에도 누군가는 나와야 했다. 버틸 수 있는 직원은 드물었다. 결국 직원들이 줄사표를 냈다. 현장에는 A씨와 다른 동료 한 명만 남았다. 최초 공사 계획 체계도상 6명이 일하기로 한 현장이었다.


곳곳에서 드러난 이상징후⋯그래도 회사는 "병가 낼 거면 그만둬"

"머리가 터질 정도로 아파서 출근을 못 하겠다."


A씨는 발령받은 지 한 달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버렸다. 체중은 10kg이나 줄고,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주변엔 머리가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행동도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릴 것처럼 서 있거나, 생각에 잠긴 채 운전을 하다가 접촉 사고를 내기도 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상태가 악화돼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A씨. 당시 병원 기록에 따르면 A씨는 우울, 무기력 등을 호소했다. 의료진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며,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A씨의 이상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회사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오히려 병가를 신청하는 A씨에게 "그만두라"고 말했다. 이후 병가는 승인됐지만, 주 1~2회는 출근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병가 아닌 병가'였다.


병가 하루 앞두고, 그는 결국 세상을 등졌다

그날. A씨의 품엔 병가 신청에 필요한 병원 진단서가 있었다. 그는 회사에 진단서를 제출할 겸, 병가 기간에 그의 일을 대신할 직원에게 인수인계를 할 겸 회사로 향했다.


거기서 감리단장을 마주쳤다. 평소 A씨에게 화를 자주 내던 사람이었다.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감리단장은 얼마 전 공사 현장에 A씨가 나오지 않은 것을 두고 화를 냈다. 그날은 A씨가 스트레스 때문에 출근하지 못했던 날이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동료에 따르면 당시 A씨는 손을 덜덜 떨면서 감리단장과 대화를 이어나갔다고 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 A씨를 볼 수 없게 됐다. 1시간쯤 뒤 A씨는 화장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른 사무실에서 유서가 발견됐다.


"출근길은 지옥행이다. 20년간 이런 출근길은 처음이다. 지금, 이 순간도 지옥행. (중략)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다. 제발 제발..."


병가 시작을 하루 앞둔 마지막 출근 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의 만장일치 "과중한 업무로 인한 업무상 재해"

A씨의 사망을 심의한 공단은 "업무상 재해가 맞는다"고 판정했다. 심의를 맡은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 위원들의 전원 일치였다.


공단 측은 "(해당 현장으로) 발령받은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 동료 직원들의 부재와 과중한 업무 등이 요인이 돼 우울증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자살을 할 만한 개인적인 이유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심한 우울증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료진의 소견을 비롯해 A씨의 근무 환경, 동료들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판단이었다.


남겨진 유족들에게 공단의 산재 확인 과정은 그 자체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가족들도 몰랐던 A씨의 고통이 객관적인 자료로 드러났다. 결혼 9년 만에 시험관을 통해 어렵게 가진 딸을 위해서 말 못 하고 참아가며 회사에 다녔을 A씨 생각에 부인은 매일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부인은 남편의 산재를 꼭 인정받아야만 했다.


A씨 부인에게는 기나긴 시간이었다. 9개월 만에 공단이 산재를 인정했다. 유족 급여와 장례비 지급 결정이 났다. 그렇게 끝나나 싶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갑작스러운 회사의 이의제기, 이유는 보험료 때문

하지만 갑작스레 회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공단의 산재 승인 처분에 취소소송을 냈다. 공단에 "유족 급여를 줘선 안 된다"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유가족은 산재 승인이 취소될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에 또다시 절망했다.


공단이 사망한 A씨에게 해준 산재 승인 처분을 '제3자'인 회사가 "취소해달라"고 한 것은 이례적이다. 산업재해로 근로자가 사망하면, 공단이 유가족에게 유족 급여를 지급한다. '주는 사람'은 공단이고, '받는 사람'은 유가족인 구조다. 이런 흐름에서 회사는 빠져있다. 회사는 평소에 산업재해가 벌어질 것을 대비해 공단에 보험료를 낼 뿐이다.


하지만 A씨 회사는 "A씨에게 유족 급여를 지급하면 다음 해 우리 회사의 보험료가 인상될 수도 있다"며 소송을 시작했다. 미래에 오를지도 모르는 보험료를 '방어'하고자 유족 급여에 시비를 건 것이다.


회사의 '끼어들기'로 시작된 소송⋯재판부 "소송할 자격 있다"

'법무법인 이평'의 양지웅 변호사. /로톡 DB
'법무법인 이평'의 양지웅 변호사. /로톡 DB

A씨 유가족을 대리한 '법무법인 이평'의 양지웅 변호사는 "A씨 회사 측은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향후 산재보험료가 인상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 회사가) 직접적⋅구체적 이익을 침해당한 게 아니다"며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이런 '끼어들기' 때문에 사건을 맡은 인천지법은 '본안 전 판단'을 했다. 사건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이 사건이 소송을 할 만한 일인지를 판단한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회사가 원고로서 자격이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소송의 자격은 있다"고 판단했다.


"반드시 보험료액에 어떤 변동이 있고, 부과처분이 있고 나서야만 정당한 이익이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향후 보험료가 달라질 가능성만으로 충분하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퇴직금도, 연차 수당도⋯회사는 아직도 주지 않았다

본격적인 소송에 돌입하자 회사는 "A씨는 자살 당시 우울증 치료로 업무를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에서 손을 뗀 지 시간이 흘렀으므로 A씨의 죽음과 업무는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게 회사 입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망인은 공사 현장 근무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한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에 이르게 됐다"면서 자살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청구한 소송을 기각했다. "망인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고, 원고(회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 공단이 유가족에게 유족 급여를 지급한 건 문제가 없다는 판정이었다.


수백 장에 이르는 소송 기록 중에는 A씨의 미사용 연차수당에 대한 자료도 있다. 이 회사 공채 1기 직원이었던 A씨는 20년 가까이 회사에 다니면서 매년 제때 가야 하는 휴가를 제대로 가지 않았다. 그렇게 가지 못해 돈으로 쌓인 연차수당이 2016~2018년 3년간 804만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A씨의 퇴직금도 아직 미지급 상태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A씨 퇴직금 미지급에 대해 회사를 고발했다. 회사는 벌금 500만원에 처해졌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실제로 회사가 퇴직금 등 임금 미지급으로 벌금까지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죄질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적반하장이었다. 오히려 회사는 퇴직금 줄 게 없다며 유족을 상대로 '채무부존재소송'까지 제기했다. 유족은 현재까지도 A씨의 퇴직금을 받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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