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같은데 몰랐다?" 법원, 신탁 부동산 빼돌린 꼼수 거래에 '7억 배상' 철퇴
"대표이사 같은데 몰랐다?" 법원, 신탁 부동산 빼돌린 꼼수 거래에 '7억 배상' 철퇴
채무 초과 상태서 담보신탁 부동산 매각은 책임재산인 '수익권' 소멸 행위
매도인·매수인 대표이사 및 주소지 동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채무자 회사가 유일한 자산인 '담보신탁 부동산'을 특수관계 법인에 매각한 행위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겉으로는 정상적인 매매계약처럼 보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채권자들의 공동담보인 '신탁 수익권'을 소멸시킨 사해행위라고 판단했다.
춘천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윤경아)는 지난 1월 8일, 채권자 A사(원고)가 부동산 매수인 B사(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사해행위취소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7억 5,812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2023가합31372).
빚더미 앉은 채무자, '한 지붕 두 가족' 회사로 자산 넘겨
판결문에 따르면 채권자 A사는 2017년부터 채무자 C사와 오피스텔 신축 사업을 진행하며 자금을 대여했으나, 사업 부진으로 인해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약 21억 6,2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C사는 2020년 말 기준 부채가 자산을 100억 원 가까이 초과해 자본금 대비 결손금 비율이 100%를 넘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C사에게 남은 자산은 춘천시 소재 1,151.2㎡ 규모의 토지가 유일했는데, 이마저도 저축은행 대출을 위해 신탁회사에 담보신탁 된 상태였다.
문제는 C사가 2021년 3월 19일, 해당 토지를 신설 법인인 B사에 18억 3,850만 원에 매도하면서 발생했다. 이 거래로 토지 소유권은 신탁회사에서 C사로, 다시 B사로 넘어갔고, B사는 즉시 다른 신탁회사와 새로운 담보신탁 계약을 체결했다.
재판부는 이 거래 과정에서 C사와 B사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했다. 매매 계약 당시 두 회사의 대표이사는 'J'로 동일 인물이었으며, 본점 소재지 또한 같은 건물의 같은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상 한 사람이 만든 두 회사가 자산을 주고받은 셈이다.
법원 "신탁 부동산 매각은 '수익권' 증발시킨 사해행위"
쟁점은 담보신탁 된 부동산의 매각을 '재산 빼돌리기(사해행위)'로 볼 수 있느냐였다. B사 측은 "매매대금으로 기존 대출금을 상환했고, C사가 신탁회사를 상대로 133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었으므로 무자력(채무 초과) 상태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재판부는 "담보신탁 된 부동산이 처분되면 위탁자(C사)가 가지는 '신탁 수익권'이 소멸한다"며 "이 수익권은 대출금 등을 공제하고 남은 금액을 돌려받을 권리로 일반 채권자들의 공동담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즉, 부동산 매각으로 인해 채권자 A사가 압류할 수 있는 '수익권' 자체가 사라져 빚을 갚을 능력이 더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B사가 주장한 '133억 원대 소송 채권'에 대해서도 법원은 "C사가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만한 증거가 부족하므로 이를 실질적인 적극재산으로 볼 수 없다"고 일축하며, 매매 당시 C사는 명백한 무자력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몰랐다" 발뺌 통하지 않아... 7억 5,800만 원 '가액배상' 명령
B사 측은 "사업 성공을 위한 경영상의 판단이었을 뿐 사해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매도인과 매수인의 대표이사가 동일하고, 피고의 사내이사가 대표이사의 배우자인 점 등을 볼 때 피고는 사실상 이 거래를 위해 설립된 법인으로 추측된다"며 "C사의 사해 의사와 B사의 악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원상회복을 명했다. 다만 부동산이 이미 제3자에게 신탁되어 등기 자체를 말소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공평에 반한다고 보아 '가액배상' 방식을 택했다.
배상액은 사해행위 당시 토지의 감정평가액(약 20억 1,460만 원)에서 최우선으로 변제되어야 할 저축은행 대출금 등 피담보채무액(약 12억 5,647만 원)을 공제한 '7억 5,812만 원'으로 산정됐다.
재판부는 주문을 통해 "피고와 C사 사이에 체결된 매매계약을 7억 5,812만 7,398원의 한도 내에서 취소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동액 및 확정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