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그 건물 관리인이었다… 20년 만에 밝혀진 '엽기토끼'의 두 얼굴
범인은 그 건물 관리인이었다… 20년 만에 밝혀진 '엽기토끼'의 두 얼굴
DNA가 지목한 신정동 연쇄살인범, 10년 전 이미 사망
2006년 '신발장 납치'와는 별개 인물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20년 만에 특정됐다. 당시 빌딩 관리인이던 A씨로 확인됐지만 이미 사망해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캡처
20년이라는 시간은 진실을 덮기에 충분한 듯 보였다. 쌀포대에 담긴 시신, 기묘한 매듭, 그리고 공포의 상징이 된 '엽기토끼 스티커'. 대한민국 미제 사건의 대명사였던 서울 양천구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드디어 특정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21일, 2005년 발생한 두 건의 살인 사건 범인으로 당시 범행 장소 인근 빌딩의 관리인이었던 A씨를 지목했다. 하지만 수갑을 채울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10년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A씨가 2006년 '엽기토끼 신발장 사건'의 범인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악몽의 시작, 쌀포대 속의 여인들
시계바늘을 2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05년 6월 6일, 서울 신정동의 한 주택가 쓰레기 무단 투기 현장에서 20대 회사원 A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쌀포대에 담긴 시신은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고,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인 그해 11월 20일, 40대 가정주부 B씨가 친정집에 간다며 나간 뒤 실종됐고, 역시 신정동 주택가에서 비닐과 끈에 묶인 시신으로 발견됐다. 6개월 간격으로 발생한 이 연쇄 살인은 서울 서남부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당시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했지만,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2006년 5월, 반지하 주택에 납치됐다가 탈출한 생존자가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이 사건은 '엽기토끼 살인사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23만 명 대조 끝에 찾아낸 '병원 조직 검체'
미제 사건으로 묻힐 뻔했던 진실은 과학수사의 힘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6년 수사를 재개한 경찰은 1·2차 살인 사건 현장의 증거물(속옷과 노끈)에서 나온 DNA가 동일인의 것임을 확인했다. 즉, 두 건의 살인은 동일범의 소행이었다.
경찰은 무려 23만 1,897명을 수사 대상자로 선정하고 1,514명의 DNA를 대조하는 저인망식 수사를 펼쳤다. 하지만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사팀은 포기하지 않고 사망자로 눈을 돌렸다.
그 과정에서 당시 희생자들이 방문했던 빌딩의 관리인 A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A씨는 이미 2015년 7월 사망해 화장된 상태였다. 더 이상 DNA 대조가 불가능해 보였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경찰이 경기 부천 등 병원 40곳을 탐문한 끝에 A씨가 생전 수술 등을 받으며 병원에 보관되어 있던 신체 조직(검체)을 찾아낸 것이다.
이 검체와 현장 DNA를 대조한 결과, 마침내 일치 판정이 나왔다. 20년 만에 범인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006년 엽기토끼는 그가 아니다
이번 수사 결과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 그동안 대중은 2005년의 살인 사건과 2006년의 납치 미수 사건(엽기토끼 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경찰은 "2005년 연쇄 살인 피의자 A씨는 2006년 사건의 범인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유는 명확하다. 2006년 5월,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A씨는 이미 별도의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엽기토끼 사건'으로 묶어서 불렀던 사건들 중, 앞선 두 건의 살인 사건은 A씨의 소행이 맞지만, 생존자가 탈출하며 목격했던 '엽기토끼 신발장'의 집주인은 A씨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아직 잡히지 않은 또 다른 괴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서늘한 가능성을 남긴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의 생사와 관계없이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각오로 수사했다"며 유족에게 위로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