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간 금전·폭행·배신, 법적 책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나
연인 간 금전·폭행·배신, 법적 책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나
수술대 누운 저를 두고 바람
'갚겠다'던 돈도, 제 마음도 짓밟혔어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제가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 동안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2년 반을 만난 연인에게 폭행과 배신을 당하고 금전적 피해까지 입은 한 여성의 절규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친구의 민낯을 마주한 A씨는 그에게 빌려준 돈과 마음의 상처를 법적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A씨는 2년 넘게 교제하며 남자친구에게 450만원을 빌려줬고, 최근 임신 사실을 알게 됐지만 여러 사정으로 아이를 지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A씨가 수술대 위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던 그 시각, 남자친구는 다른 여성과 부적절한 만남을 갖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가 관계 정리를 요구하자, 남자친구는 “빌려간 돈은 꼭 갚겠다”, “사줬던 고가 선물도 모두 돌려주겠다”며 카카오톡 메시지로 약속했다.
과거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해 상해죄로 벌금 300만원 처벌을 받게 했던 기억까지 떠오른 A씨는 “돈과 물건을 넘어, 그에게 또 다른 전과를 남겨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다”며 울분을 토했다.
카톡으로 한 '갚겠다'는 약속, 법적 효력 있을까?
변호사들은 A씨가 돈과 선물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입을 모았다. 남자친구가 스스로 갚겠다고 약속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모먼트 박근호 변호사는 “남자친구가 450만원을 갚겠다고 명시적으로 말한 부분은 대여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에스엘 이성준 변호사 역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증거로 민사소송을 통해 돈과 선물을 돌려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법적 대응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연인 간 선물은 증여로 간주돼 반환 의무가 없지만, 이 사건처럼 상대가 자발적으로 반환 의사를 표시했다면 이를 근거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즉, A씨는 남자친구를 상대로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이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빌려준 돈과 돌려받기로 약속한 선물을 되찾을 수 있다.
과거 폭행 전과, 또 다른 처벌은 불가능한가?
A씨의 가장 큰 바람인 남자친구에게 ‘전과’를 남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변호사들의 중론이다. 우선 과거 폭행 사건은 이미 벌금형이라는 형사처벌이 완료됐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동일한 범죄에 대해 두 번 처벌받지 않는 원칙)’에 따라 다시 문제 삼을 수 없다.
돈을 갚지 않는 행위를 사기죄로 처벌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법률사무소 필승 김준환 변호사는 “상대방이 처음부터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 없이 의뢰인을 속여 돈을 받아냈다면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면서도, 연인 관계에서의 금전 거래는 ‘갚을 생각 없이 빌렸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결국 남자친구가 돈을 갚지 않는 것은 형사상 ‘사기’보다는 민사상 ‘채무 불이행’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과거 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민사소송이 가능하다.
법무법인 세현 조현정 변호사는 “이미 형사처벌을 받은 이상 더 이상의 형사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상대방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폭행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인의 배신, 법정에 세울 수 없는 '마음의 죄'?
A씨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임신 중절 중의 외도 행위는 안타깝게도 법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
법적으로 부부에게만 인정되는 ‘성적 성실의무’가 결혼하지 않은 연인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민 박경환 변호사는 “결혼한 사이가 아니니 바람을 피웠다고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잘라 말했고,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 역시 “혼인 관계가 아니므로 상간 행위로 법적 책임을 묻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A씨가 겪은 배신감의 상처를 법이 직접 처벌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현재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남자친구의 약속이 담긴 카톡을 근거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금전적 피해를 회복하고, 과거 폭행 사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이다.
A씨가 겪은 배신의 상처를 법이 온전히 치유할 순 없지만, 명백한 금전적 피해와 폭행의 상처에 대해서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법적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