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렵다는 '산업 재해'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유족은 회사와의 '소송 지옥'에 빠져있다
그 어렵다는 '산업 재해'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유족은 회사와의 '소송 지옥'에 빠져있다
"출근길은 지옥행" 유서 남기고 극단적 선택한 고(故) 김일두씨
회사는 산재 보상을 막으려고 꼬리를 문 소송전 벌여
산재 인정받은 유족은 왜 여전히 회사와 싸울 수밖에 없나

지난 21일 인천지검 앞에서 고(故) 김일두씨 유족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산재 인정을 받은 유족은 여전히 회사와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인천=박선우 기자
고인이 된 김일두씨는 한 건설회사 '공채 1기' 출신의 장기근속 사원이었다. "회장 아드님이 회사에 들어오면, 내가 보필해야지"라고 말하던, 회사에 다니는 게 "행복하다"던 직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모두가 기피하던 공사 현장으로 발령받으며 변해갔다. 발령 두 달 만에 몸무게가 10kg 이상 빠졌고, 극심한 두통과 함께 잇몸이 주저앉았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일하던 공사 현장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공단은 김씨가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도한 업무를 떠안다가 생긴 우울증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다. 김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이다.
고인의 아내 A씨는 공단의 조사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남편이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숨겼던 괴로움과 마주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인고의 시간 끝에 산재가 인정됐고,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재 인정 후에도 회사는 마음만 먹으면 유족을 계속 고통스럽게 할 수 있었다. 실제 그렇게 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결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회사가 제기했다.
가장을 잃은 유가족 입장에선 치명적인 절차였다. 하지만 법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 고인의 죽음은 회사의 논리대로 풀어 헤쳐졌다.
회사가 건 소송은 또 있었다. 퇴직금도 문제 삼았다. 고용노동부가 "유족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려도 회사는 따르지 않았다. 고인의 아내 A씨에 따르면, 연차수당 역시 미지급 상태다. 이에 법원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지만, 새로운 소송으로 문제를 삼았다. "이미 퇴직금을 줬는데 또 달라고 한다"는 취지에서 법원에 '퇴직금 채무 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고인의 아내 A씨는 "남편이 20년간 청춘을 다 바친 회사가 유족을 괴롭히려 온갖 소송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인천지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A씨는 계속된 법정 싸움으로 생계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운영하던 가게는 접었고, 은행 대출로 생활비를 마련했다. 정신적 고통에 약으로 버티고 있다.

고인은 유서에서 "출근길은 지옥행"이라고 했다. 실제로 현장은 열악했다. 직원들의 퇴사로 업무는 고인에게 몰렸다. 회사의 인력 지원은 없었다. 그 와중에 공사를 지휘하는 감리단의 잦은 공문 요청으로 야근이 일상이었다.
이에 대해 A씨는 "남편은 명백히 기업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증거를 인멸하려던 정황도 발견됐다. 고인의 아내 A씨에 따르면, 회사에서는 고인이 사망하자, 고인이 쓰던 노트북 등 물품부터 없앴다. 다행히 쓰레기통은 손대지 않아, 고인이 작성했던 유서를 찾을 수 있었다.
회사의 이런 태도는 고인의 아내인 A씨에게도 충격이었다. 회장님으로 불리던 대표이사는 고인과 평소 가족동반 여행도 갔던 사이였다. A씨가 임신했을 때 대표는 두둑한 봉투를 챙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공단의 산재 조사가 시작되자 그런 추억은 깨끗이 오려낸듯 했다. 오히려 "고인이 사망 당시, 우울증 치료 때문에 업무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산재 보상금이 나온다고 해도 그 돈은 공단으로부터 나오는 거였지만, 회사는 적극적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되지 않도록 애를 썼다.
더불어 A씨에 따르면, 산재를 인정받아 공단에서 받는 장례비를 중간에서 가로채기도 했다. "돌려준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금은 연락조차 받지 않는다.
A씨는 "산재 보상금으로 나오는 장례비는 가져갔으면서, 산재 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은 왜 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산업재해로 근로자가 사망하면 공단이 유가족에게 장례비를 지급한다. 이를 챙겨가 놓고, 장례비 1500만원의 근거가 된 '산재 승인'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한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토로였다.

회사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A씨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그는 "형제도 없다"며 "정말 혼자였다"고 말했다. 자녀는 아직은 A씨의 손이 필요한 나이.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뛰어놀 정도로 어렸다.
백방으로 뛰었지만, 도움을 받는 건 쉽지 않았다. 여러 로펌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부분 "(어려운) 소송 안 하겠다"며 거절했다. A씨는 산재 관련 기사를 뒤져가며, 혼자 정보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보니 운영하던 가게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A씨는 "소송으로 운영하던 가게를 비우면서 운영상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끝이 안 보이는 소송. 이를 혼자 견디다 보니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A씨를 덮쳤다. A씨는 "(유족의) 고통은 내가 죽는다고 끝이 아니기에 더욱 속상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A씨가 마음을 다잡은 건, 고인인 남편과 자녀 때문이었다. 남편의 한(恨)을 풀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남편에게 떳떳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우리 가족과 오래 알고 지낸 회사는 이런 내 사정을 알 것"이라며 "회사에는 고문변호사가 있기 때문에 쉽게 소송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해당 건설회사 관계자는 "우리도 직원을 그렇게 보내 황망하다"며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 반박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가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아니다"라고 했다. 관계자는 "(김일두씨) 생전에 다른 임원이 (김일두씨가) 몸이 아프고 우울증이 있어 병가를 냈으면 한다는 얘기를 했다"며 "그날 대표는 병가를 가라고 했고, 이후에 사무실 근무로 전환하라고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 역시 소송을 안 하고 싶고, 유족과 뜻이 맞으면 합의할 생각 있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금과 장의비 등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는데, 이에 관해 법원 판결을 받고, 회사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