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마누라' 아버지 폰에 깔아둔 녹음 앱, 그날 2시간 30분의 통화가 흘러나왔다
'자기야, 마누라' 아버지 폰에 깔아둔 녹음 앱, 그날 2시간 30분의 통화가 흘러나왔다
자녀가 수집한 '불륜 증거'의 역설
법조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 형사처벌 가능성"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아버지의 불륜 증거를 잡기 위해 휴대폰에 몰래 녹음 앱을 설치한 자녀. '결정적 증거'라 믿었던 그 파일이 오히려 자신을 겨누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아버지의 휴대폰에서 상간녀와 '사랑한다'며 카톡을 주고받는 것을 목격한 순간, 평온했던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의 배신을 입증하기 위해 자녀 A씨가 직접 수집한 통화 녹음과 메시지 기록. 하지만 이 '결정적 증거'가 되레 A씨를 형사처벌의 덫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법률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A씨가 아버지의 불륜을 직감한 것은 지난 7월 27일 저녁이었다. 무심코 본 아버지의 휴대폰 화면에는 낯선 여성과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아버지가 대화 내용을 매번 삭제하는 것을 눈치챈 A씨는, 일주일 뒤 아버지의 휴대폰에 알림 내용을 저장하는 앱(노티스타)과 통화 자동녹음 앱(에이닷)을 몰래 설치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8월 10일, A씨는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아버지의 휴대폰에는 상간녀와의 2시간 30분 분량의 통화 녹음 파일이 저장돼 있었다.
녹음 파일 속 두 사람은 서로를 '자기야', '오빠', '마누라'라고 부르며 성관계와 모텔 방문 사실을 거론했다. 어머니를 험담하고, 함께 살 집과 가구를 알아보는 등 새로운 살림을 차릴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상간녀 역시 아버지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A씨의 추궁에 "그저 술친구일 뿐"이라며 불륜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충격 속에서도 "이혼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A씨는 아버지를 향한 배신감과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사이에서 법률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아빠 폰 몰래 녹음"… 결정적 증거인가, 불법의 함정인가?
A씨가 가장 궁금해한 것은 직접 수집한 증거의 법적 효력이었다. 변호사들의 의견은 명확하게 엇갈렸다. 핵심 쟁점은 증거 수집 과정의 '불법성'이었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A씨의 증거 수집 방식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파이브스톤즈 법률사무소 김대희 변호사는 "통화녹음의 경우, 대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몰래 설치한 프로그램으로 녹음했다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한발 더 나아가 "질문자님의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며 "아버님이 고소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단언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며, 이를 위반해 얻은 녹음 파일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A씨가 확보한 2시간 30분짜리 통화 녹음이 법정에서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심지어 A씨를 처벌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반면, 민사 소송에서는 증거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한장헌 변호사는 "민사상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는 증거능력 판단이 형사보다 완화되어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 불륜 자체는 민사상 '부정행위'에 해당하므로, 증거의 위법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소송에서 실익을 따져볼 수 있다는 취지다.
어머니는 이혼 거부… '상간녀 소송'은 가능하다
어머니가 이혼을 원치 않는 상황에서 A씨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법적 카드는 무엇일까. 변호사들은 '상간녀 위자료 청구 소송'을 공통된 해법으로 제시했다.
상간자 소송은 이혼과 별개로, 혼인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는 제3자에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절차다. 변호사 김일권 법률사무소의 김일권 변호사는 "어머니가 이혼을 원치 않더라도 상간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며 "경험 있는 변호사와 함께 진행하면 3천만원 상당의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가 확보한 증거 중 상간녀가 아버지의 혼인 사실을 알고도 만남을 이어간 정황은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 핵심 요소다. 법무법인 명재 최한겨레 변호사는 "상간녀가 아버님의 혼인사실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의 녹취록에는 이 부분이 명확히 담겨 있어 상간녀의 책임을 묻기에 충분해 보인다.
다만, 위험한 증거를 무턱대고 제출하기보다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뒤따랐다.
법무법인 승원 한승미 변호사는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부정행위 당사자들을 추궁해 자백 진술을 받고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며, 불법 증거를 직접 사용하기보다 '압박용 카드'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결국 A씨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손에 쥔 '결정적 증거'가 자신을 겨누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아버지의 부정을 입증할 증거는 차고 넘치지만, 그 증거를 법정에 내미는 순간 A씨 자신이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
아버지의 배신이 남긴 상처 위에, 법의 무게가 또 다른 고통으로 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