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입증 못한 지옥의 2년"... 성인방송 강요 남편, 왜 '강요죄'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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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입증 못한 지옥의 2년"... 성인방송 강요 남편, 왜 '강요죄' 빠졌나

2026. 01. 02 11:23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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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와 지인 진술만으론 넘지 못한 '증거의 벽'

징역 3년 판결의 이면

성인방송 강요로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편이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피해자 사망으로 인한 증거 부족으로 정작 핵심인 '강요죄'는 처벌 범위에서 제외됐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23년 12월, 한 30대 여성 A씨가 남편의 감시와 협박 속에서 강제로 성인방송을 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끝내 세상을 등졌다. 유족은 남편 김모(39) 씨를 고소했고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선택은 징역 3년이었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법정 밖에서 상의를 찢으며 울부짖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3년이라니, 이 나라 법은 내 편이 아니다"라는 그의 절규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현행 증거법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결과라고 분석한다.


군 부사관 출신의 음란물 판매와 '나체 사진' 협박의 시작

사건의 발단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육군 부사관이었던 김씨는 아내 A씨를 포함한 여성들의 음란물을 제작해 판매하다 군 당국에 적발됐다. 군은 김씨를 수사 의뢰하지 않고 강제 전역 조치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전역 후 수입이 끊긴 김씨는 본격적으로 아내를 착취하기 시작했다. 그는 A씨에게 성인방송 출연을 강요하며 "요구를 거절하면 나체 사진을 장인어른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김씨는 휴대전화 위치 추적 앱으로 A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집에 감금하기까지 했다.


A씨는 지인들에게 "남편의 감시가 너무 괴롭다"는 문자 메시지를 수차례 보냈으며, 결국 2023년 12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별거 후에도 계속된 김씨의 금전 요구와 협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검찰은 김씨를 정보통신망법 위반(음란물 유포), 감금, 협박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정작 사건의 핵심인 '강요 혐의'는 기소 단계에서 제외됐다. 이것이 이번 사건의 형량을 결정짓는 결정적 분수령이 됐다.


법정에서 울려 퍼진 "나는 을이었다"는 가해자의 궤변

재판 과정에서 김씨 측은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아내의 성인방송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에 자신은 오히려 '을'의 위치였으며, 감금할 만한 지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A씨가 자발적으로 방송을 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인 인천지법 형사5단독(홍준서 판사)은 김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범죄가 A씨 사망의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사망 직전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팬과의 관계나 방송 스트레스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항소심 재판부(인천지법 형사항소2-1부, 이수환 부장판사) 역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강요죄가 기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근거로 형을 가중하는 것은 죄형 균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가해자의 악질적인 행태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왜 법은 가해자에게 엄중한 심판을 내리지 못했을까. 그 핵심은 '입증 책임'과 '전문증거의 한계'에 있다.


유서가 있어도 '강요죄' 입증이 불가능했던 법적 이유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서 강요죄가 빠진 이유로 피해자의 사망을 꼽는다. 형법 제324조 강요죄가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결과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수원지방법원 2024. 2. 20. 선고 2024고단4434 판결 참조).


가장 큰 걸림돌은 증거법이다. A씨가 남긴 유서와 지인들의 증언은 법적으로 '전문증거'에 해당한다.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에 따라 전문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으며, 작성자가 사망한 경우 형사소송법 제314조에 따라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2017도15868 등)는 이 특신상태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다. 피해자가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작성한 유서는 허위 개입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특히 본 사건처럼 피고인이 "자발적 방송이었다"고 맞설 경우,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는 유서만으로는 강요의 고의를 입증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1심에서 인용된 목격자 진술은 인과관계를 더욱 흐트러뜨렸다. 피고인의 협박 외에도 다른 BJ와의 갈등 등 외부 스트레스 요인이 존재했다는 정황은 법원으로 하여금 피고인의 행위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제한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근거가 됐다.


제도적 사각지대... 성인방송 강요 근절을 위한 과제

결국 이번 판결은 기소된 혐의(음란물 유포, 감금, 협박)에 대해서만 형량을 산정할 수밖에 없었던 법원의 한계를 보여준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3(촬영물 이용 협박·강요) 등의 적용을 검토할 수 있었으나, 피해자 사망으로 인한 구체적 물증 부족이 검찰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성인방송 강요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 및 착취 구조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을 대체할 수 있는 간접증거의 증거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자메시지, 계좌 내역, 위치 추적 기록 등 비진술증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강요의 인과관계를 넓게 인정하는 입법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군 복무 시절 발생한 범죄를 단순 강제 전역으로 끝낸 군 당국의 안일한 대처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초기에 엄정한 수사가 이뤄졌다면 A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법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사이, 유사한 범죄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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