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핑계 대지 마" 형량 높인 2심 판결… 대법 "장애인 방어권 보장하라" 전격 파기
"정신병 핑계 대지 마" 형량 높인 2심 판결… 대법 "장애인 방어권 보장하라" 전격 파기
정신장애 주장을 '양형 가중' 사유로 삼은 2심 판결 파기
"장애인 방어권 위축 초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지적장애 소년이 법정에서 자신의 정신적 장애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반성하지 않는다'며 형량을 가중한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장애를 밝히며 선처를 구하는 행위를 인격적 비난이나 양형 가중의 근거로 삼는 것은 장애인의 정당한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퇴원 20일 만의 비극… '지적장애 3급' 소년의 엇갈린 심리
사건은 지난 2024년 8월 1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의 한 중학교 인근에서 발생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A(18)군은 등교 중이던 중학생 B양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고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A군은 평소 호감을 가졌던 B양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이 같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심각한 외상을 입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A군의 배경은 일반적인 소년범과는 차이가 있었다.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A군은 2018년부터 공격성과 폭력성이 심해져 범행 전까지 수차례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해 왔다. 특히 이번 사건은 A군이 정신의학과적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퇴원한 지 불과 20일 만에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어, 그의 정신적 상태가 범행에 미친 영향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1심 재판부는 A군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주장한 심신미약 상태는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장기 8년·단기 5년을 선고했다. 이에 검사와 피고인 모두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으나, 2심의 판단은 더욱 엄격했다. 2심 재판부는 단 한 차례의 공판만으로 변론을 종결한 뒤 A군의 형량을 장기 9년·단기 6년으로 가중했다. A군이 정신의학과적 병력을 핑계로 책임을 덜려 할 뿐,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정신질환은 핑계인가?" 형량 높인 2심 판결의 법리적 무리수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대법원은 우선 소년이자 장애인인 피고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하급심이 충실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소년법의 목적을 종합하면, 법원은 정신적 장애를 호소하는 소년의 사정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특히 대법원은 심신미약 주장을 '반성 부족'으로 해석해 양형 가중 사유로 삼은 원심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신적 장애를 이유로 심신장애를 주장하는 것을 '인격적 비난 요소'로 보아 가중적 양형 조건으로 삼는 것은, 장애인이 충분한 방어행위를 하지 못하게 해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 실질적 평등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정당한 방어권 행사가 오히려 형량의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모순을 지적한 것으로, 피고인이 장애를 밝히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했다. 설령 처벌을 모면하려는 의도가 의심되더라도,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장애 상태에 대한 면밀하고 충분한 심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단순 처벌보다 '치료적 사법' 강조… 향후 소년범 재판의 이정표
대법원은 또한 A군의 치료 경력과 재범 위험성에 주목했다. 퇴원 직후 범행이 발생한 점을 미루어 볼 때 정신질환이 범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크며, 적절한 치료 없이 징역형만 복역하고 사회에 복귀할 경우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짚었다. 이에 따라 법원은 검사에게 치료감호 청구를 요구할 필요가 있는지 등 피고인에게 가장 적합한 처분이 무엇인지 신중히 검토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소년법 제1조 및 소년심판규칙 제56조에 명시된 '소년의 심신상태에 대한 정확한 사실 조사' 의무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한, 장애인 피고인의 심신미약 항변을 양형상 불이익의 근거로 삼는 실무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결국 파기환송심에서는 A군의 정신장애 정도와 범행의 상관관계, 그리고 단순 징역형 외에 치료감호 등 치료적 처분의 필요성에 대한 재심리가 심도 있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