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살고 나가려 하자 “벽지 닳았다”며 보증금 안 준 집주인…정당한가요?
12년 살고 나가려 하자 “벽지 닳았다”며 보증금 안 준 집주인…정당한가요?
자연 마모는 세입자 책임 아냐
보증금 돌려받는 법적 대응법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한 빌라에서 2013년부터 12년간 전세로 거주한 할머니. 이사를 나오려 하자 집주인과 대리인은 벽지와 장판 마모, 문틀 손상, 신발장 시트지 들뜸, 청소비 등을 명목으로 보증금 200만 원 전액을 요구했다. 대리인은 “요즘 다 그렇게 한다”는 말만 반복하며 구체적인 근거 없이 보증금 액수만큼의 배상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벽지 낡고 장판 닳는 것, 정말 세입자 탓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법원은 세입자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변호사들은 12년 동안 거주하며 발생한 마모는 세입자가 책임져야 할 ‘훼손’이 아닌, 자연스러운 ‘노후화’라고 입을 모았다.
더신사 법무법인의 유선종 변호사는 “통상적인 생활로 인한 벽지·장판 손상은 세입자가 원상복구할 의무가 없고, 임차인이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훼손한 부분만 책임지면 된다”고 설명했다. 신발장 시트지가 저절로 들뜬 것 역시 마찬가지다.
법원은 임대차 계약의 월세나 전세 보증금 이자에는 이미 이러한 감가상각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만약 세입자에게 자연 노후 수리비까지 부담시킨다면, 집주인은 월세를 받고 집수리 비용까지 챙기는 ‘초과 이익’을 얻게 되어 부당하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다.
보증금, 어떻게 돌려받아야 하나?
그렇다면 집주인의 부당한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변호사들은 감정적인 대응보다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우선, 집주인에게 손상에 대한 임차인의 고의·과실이 없었으며, 이는 12년의 세월에 따른 ‘통상의 손모’임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 법무법인 유안의 조선규 변호사는 “집주인이 주장하는 공제 항목별로 구체적인 비용 산정 내역을 요구하고, 막연히 보증금 전액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핵심은 ‘입증 책임’이 집주인에게 있다는 점이다. 세입자가 일부러 집을 망가뜨렸거나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손상을 입혔다는 사실을 집주인이 직접 사진 등의 증거로 증명해야 한다. “요즘 다 그렇다”는 식의 막연한 주장은 법적 효력이 없다.
만약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체국을 통해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용증명에는 ‘통상의 손모에 해당하므로 원상회복 의무가 없으며, 부당하게 공제한 보증금 전액을 언제까지 반환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는 내용을 담으면 된다. 이후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소액사건심판 등 민사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12년의 세월이 남긴 흔적은 ‘파손’이 아닌 ‘일상’이다. 법은 그 일상의 무게를 세입자에게만 떠넘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