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역 휠체어리프트 추락사는 당사자 잘못" 주장,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길역 휠체어리프트 추락사는 당사자 잘못" 주장,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 서울교통공사 책임 인정 "휠체어 리프트의 구조적 문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0월 1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한경덕씨 유가족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1심 선고 결과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지하철 신길역에서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로 숨진 고(故) 한경덕씨 유족에게 서울교통공사가 1억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배상액은 유가족이 청구한 금액(2억 4000만원)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당시 사고가 시설물 문제이며 휠체어 리프트 사용이 장애인 차별이라는 유가족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1부(재판장 이유형 부장판사)는 한씨 유족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배우자에게 4552만원, 세 자녀에게 각각 2990만원 등 총 1억 3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경덕씨는 하반신과 왼팔의 운동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이동할 때는 휠체어를 사용했다. 그는 2017년 10월 신길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려다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 신길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환승을 하려면 휠체어 리프트를 타야 했는데, 이를 위해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다 변을 당한 것이다. 호출 버튼은 계단의 왼쪽에 설치돼 있었는데 왼팔에 장애가 있는 한 씨가 오른손으로 버튼을 누르기 위해 계단을 등진 상태에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 추락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된 한씨는 98일간 사경을 헤매다 지난해 1월 25일 숨졌다.
서울교통공사는 사고 발생 후 휠체어 리프트 설치에는 문제가 없었고 당사자 책임이 90%라며 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를 거부했다. 이에 유가족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지난해 3월 공사를 상대로 위자료 등 약 2억4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공사가 호출버튼을 계단에서 불과 91.5㎝ 떨어진 매우 위험한 장소에 설치하면서 추락방지를 위한 보호장치도 설치하지 않는 등 휠체어 리프트 설치·보존에 하자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사고가 한 씨의 휠체어 조작 실수나 부주의가 아닌 리프트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것이다.
공사 측은 재판과정에서 “그동안 휠체어 리프트 호출 버튼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호출 버튼을 조작하기 어려우면 주변인이나 역사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으로 사건을 피할 여지가 있었다”며 한 씨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는 교통사업자의 의무로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해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공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망인과 그의 배우자, 그리고 세 자녀가 이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명백하므로 공사는 이를 금전적으로나마 위로할 의무가 있다”며 한 씨에게 1억원, 배우자에게 1000만원, 자녀 세명에 대해 각 50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위자료 1억 원과 치료비, 전동휠체어 배상금, 장례비 등을 상속분에 따라 지급하라”며 “따라서 공사는 배우자에게 4552만원, 세 자녀에게 각 2284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들은 배우자에게 8919만원, 자녀 1인당 5112만원 등 총 2억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었다.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이전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을 때는 청구금액의 20~30% 밖에 인정이 안 됐는데 이번에는 절반 이상 인정됐다”며 “이번 사고가 시설물 문제이며, 장애인에게 안전한 시설물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들은 또 “휠체어 리프트는 안전한 교통수단이 아니며, 고 한경덕씨의 죽음이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휠체어 리프트가 엘리베이터로 대체돼야 하며, 이번 판결이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권을 지키는 중요한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