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 위반'으로 교통사고 사망⋯업무상 재해 인정 안 됐다가, 왜 법원에서 뒤집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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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위반'으로 교통사고 사망⋯업무상 재해 인정 안 됐다가, 왜 법원에서 뒤집혔나

2020. 10. 02 16:17 작성2020. 10. 06 15:46 수정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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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근로자의 '신호 위반'이 사고 이유라며 업무상 재해 인정 안 해

재판부, 유족의 손 들어줬다 "교통사고의 원인은 잘못된 신호등 때문"

출근길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A씨. '업무상 재해'로 당연히 인정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이유였을까. 해당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 없는 참고용 이미지. /셔터스톡

지난해 10월. 제주도의 한 도로. 매일 같이 지나다니던 출근길에서 A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A씨는 정지선에 잠깐 멈춰 섰다가 다시 액셀을 밟았는데, 교차로를 지나는 그 순간 왼편에서 달려오는 버스와 부딪혔다. 이 사고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A씨는 뇌출혈로 사고 한 시간 만에 숨졌다.


이후 A씨의 아내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출근길에 발생한 사고기에 '업무상 재해'로 당연히 인정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월, 지급을 거부했다. 이 사고의 원인이 A씨의 법률위반 행위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A씨가 사고 당시 적색 신호에 출발했던 것이다.


출근길 교통사고로 사망⋯'신호 위반'으로 업무상 재해 인정 안 돼

출근길 교통사고로 사망한 A씨에게 적용될 수 있는 관련법 규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는 '출퇴근 재해'로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A씨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평소 이용하던 길로 출근을 하다 발생한 이번 사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법 제37조 제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에 따라 A씨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위반(신호 위반)해 발생한 사고이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법에 규정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된' 경우를 어떻게 볼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유권해석은 이렇다.


2004년 대법원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라는 것을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전적으로 근로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도 A씨의 교통사고가 '오로지 또는 주로' A씨의 신호 위반으로 인한 것인지를 가리는 데 초점 맞춰졌다.


"사망자의 '과실'이 있어도⋯전적으로 책임 물을 수 없다면 업무상 재해 인정해야"

사건을 살펴본 제주지법 제1행정부(재판장 김현룡 부장판사)는 A씨 유가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난달 8일 열린 재판에서 "근로복지공단이 A씨의 유가족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A씨에게 일어난 교통사고가 '오로지 또는 주로' 그의 신호 위반 운전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에, '업무상 재해'가 맞다는 취지였다.


그 이유는 사고 발생 교차로에 설치돼 있는 신호등의 설치·관리상 하자가 교통사고 발생의 상당한 원인이 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A씨 진행방향에서 보이는 신호등 위치와 모습. 교차로 건너편 반대방향에 설치된 제2주신호등(왼쪽 상단 빨간색 동그라미)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지법
A씨 진행방향에서 보이는 신호등 위치와 모습. 교차로 건너편 반대방향에 설치된 제2주신호등(왼쪽 상단 빨간색 동그라미)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지법


사고 당시 A씨 진행 방향의 신호등은 2개였다. 그런데 제1주신호등은 정지선 바로 위에 설치돼 있어, 정지선에 멈추어 서 있던 A씨는 볼 수 없었다.


제2주신호등은 교차로 건너편 반대 방향 차로에 설치돼 있는 '배면등'이었다. 이에 재판부는 "반대방향 운전자가 신호등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덧붙여 "신호등의 존재를 인지하더라도 자신의 진행 방향이 아닌 다른 진행 방향의 신호등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왕복 7차로의 넓은 도로였던 점, 그리고 2008년 11월 이후 배면등 설치가 금지된 점, 제주도에서도 설치된 배면등을 조사하고 교체하고 있는 점도 고려됐다.


따라서, 재판부는 "비록 A씨에게 과실이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고가 오로지 또는 주로 망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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