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먹고 운전하면 징역 5년?...약물 운전 처벌은 세졌는데 기준은 '깜깜이'
감기약 먹고 운전하면 징역 5년?...약물 운전 처벌은 세졌는데 기준은 '깜깜이'
오는 4월부터 약물 운전 처벌 강화
약사들 "생계형 운전자에게 '운전하지 말라' 복약지도는 무용지물"

2일 오후 6시 5분께 종각역 앞 도로에서 승용차 2대와 택시 1대가 추돌하며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사진은 이날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오는 4월부터 약물 운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되면서 운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최근 약물 복용과 관련된 교통사고가 급증함에 따라 관련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명확한 약물 기준 없이 애꿎은 약사들에게만 관리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이다.
1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가 약물 운전 처벌 강화에 대한 쟁점을 짚었다.
약사들의 호소 "감기약 먹고 운전? 현실 모르는 소리"
오는 4월부터 약물 운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처벌이 최대 징역 5년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된다. 지난해 개그맨 이경규의 약물 운전 사건을 비롯해 최근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아프면 운전 쉬기' 대국민 홍보와 함께 의사·약사를 통한 복약지도 강화를 대책으로 내놨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병원에서 처방받는 감기약이나 진통제 등은 환자들이 빈번하게 복용하는 약물인데, 이에 대해 "운전하지 말라"고 경고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도 약사회 윤선희 부회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강력한 경고를 해도 환자들은 당장 안 아프게 해서 운전해야 하는데 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반응한다"며 "택배 기사나 대형 트럭 운전사 등 생계와 직결된 분들에게는 복약지도가 무용지물이었다"고 토로했다.
약사들 사이에서는 "감기약을 복용했을 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운전을 쉬라'는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고 발생 시 복약지도를 제대로 했는지 약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감기약에서 마약 성분이? 모호한 약물 기준이 문제
가장 큰 문제는 현행 도로교통법상 운전을 제한하는 약물 종류나 복용량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2일 종각역 인근에서 발생한 다중 추돌 사고의 경우, 택시 기사는 "평소 감기약을 복용했다"고 진술했지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모르핀' 양성 반응이 나왔다. 흔히 먹는 기침약이나 진통제 성분이 체내 대사 과정에서 마약 성분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작가는 "진통제인 '트라마돌'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로 해외에서는 마약류로 관리되지만, 국내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처방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항불안제, 우울증약, 졸음을 유발하는 항히스타민제, 근육이완제 등 일상적인 약물들이 모두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직 약사는 인터뷰를 통해 "감기에 걸려 감기약을 먹으면 조제 실수가 나올 정도로 몽롱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며 "전문가인 나조차도 운전대를 잡지 않는데 하물며 일반인은 얼마나 위험하겠느냐"고 경고했다.
처벌 강화가 능사 아냐...약물 위험도 등급화해야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처벌 강화에 앞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는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라는 포괄적인 규정만 있어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유 작가는 "약물 특성을 고려해 운전 금지 1등급, 운전 권고, 주의 등으로 위험도를 세분화해 등급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론화한 뒤 복약지도를 강화해야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약물 운전을 막기 위한 정교한 입법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