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삭제하라" 성추행 피해 직원 두 번 죽인 병원…'막장 대응' 도 넘었다
"CCTV 삭제하라" 성추행 피해 직원 두 번 죽인 병원…'막장 대응' 도 넘었다
변호사들 "증거인멸 교사 등 형사처벌 가능"

직원이 환자에게 성추행당한 후, 병원 측은 피해자에게 CCTV 삭제를 요구했다. /셔터스톡
환자에게 성추행당한 직원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던 병원으로부터 'CCTV를 직접 삭제하라'는 충격적인 요구를 받았다. 피해자 보호라는 상식은 무너졌고, 사건을 덮으려는 시도는 단순한 2차 가해를 넘어 형사 범죄의 영역으로 치달았다.
사건의 시작은 병원 직원 A씨가 남성 환자로부터 끔찍한 강제추행을 당하면서부터다. 환자는 A씨의 얼굴을 잡아 입을 맞추려 하고 가슴을 만지는 등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다.
A씨가 즉시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병원이 내놓은 첫마디는 "옆에 가지 말라"는 무책임한 훈계뿐이었다. 가해 환자는 아무런 제지 없이 귀가했고, 충격에 빠진 A씨에게 허락된 것은 조퇴뿐이었다.
무책임한 방치…'옆에 가지 말라'는 말뿐인 보호
병원의 비상식적 대응은 피해자 보호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병원은 경찰 신고를 망설이는 A씨에게 신고를 미루라고 종용하며 사건 축소에만 급급했다.
심지어 가해 환자를 분리하기는커녕, 그가 버젓이 병원을 계속 드나들도록 방치했다. A씨는 언제 다시 마주칠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 속에서 근무를 이어가야 했다.
강요된 사과와 압박…가해자와의 강제 대면
병원은 한발 더 나아가 A씨를 가해 환자와 강제로 대면시키는 자리까지 마련했다. 병원장은 "무릎 꿇고 사과까지 했으니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A씨에게 사과를 받아주라고 압박했다.
피해자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된 채,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였다. 결국 A씨는 근무 중 구역질을 하는 등 정상 업무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병원은 이직확인서에 퇴사 사유를 '개인 사정'이라 기재하며 끝까지 책임을 외면했다.
범죄의 영역으로…'CCTV 삭제, 허위 진술' 교사 의혹
사건 은폐 시도는 급기야 사법 절차를 방해하는 범죄 행위로 번졌다. A씨에 따르면, 병원장은 경찰 조사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도록 유도했다.
압권은 퇴사한 A씨를 병원으로 불러 "직접 CCTV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한 대목이다. 이는 범죄의 가장 결정적 증거를 인멸하라고 시킨 것과 다름없다. 나아가 함께 일했던 동료가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자, 조사에 응하지 말라고 회유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병원 책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나
변호사들은 병원의 행태가 여러 법률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① 사업주의 피해자 보호 의무 위반
조재황 변호사(법무법인 쉴드)는 "성희롱 사건 발생 시 사업주는 즉시 조사하고 피해자 보호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며 "가해자를 격리하지 않고 계속 내원하게 해 피해자가 퇴사할 정도로 고통받게 한 것은 산업안전보건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의 명백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주가 기본적인 보호 의무조차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② 증거인멸 교사 및 위증교사죄 성립 가능
강민기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원장이 CCTV 삭제를 요구한 행위는 증거인멸교사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한 "경찰 조사 시 허위 진술을 유도하고, 동료 직원을 회유한 행위 역시 위증교사죄 적용을 검토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경고했다. 단순한 사건 은폐가 아닌,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피해자의 법적 구제 방안은
정재영 변호사(법무법인 태강)는 "A씨는 가해 환자에 대한 형사고소와 별개로 병원을 상대로도 강력한 법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 ▲병원의 귀책 사유로 인한 퇴사이므로 실업급여 수급 ▲병원과 가해자 모두에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퇴사로 인한 일실수입(일을 계속했다면 벌었을 수입) 손해배상 청구 등이 가능하다. 특히 고용노동부 진정과 형사고발을 병행해 병원의 총체적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