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는 일제의 협력자’ 표현에도 손해배상 책임 부정한 재판부
'위안부는 일제의 협력자’ 표현에도 손해배상 책임 부정한 재판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견해, 학문의 자유 영역으로 인정
논란의 '위안부' 서적, 1심 뒤집고 2심서 원고 청구 기각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특정 서적의 저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법원이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저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2-1부(재판장 장석조 판사)는 2025년 1월 22일, 위안부 피해자 A씨 등 9명이 도서 저자이자 대학교수인 피고 P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기) 청구 소송에서 "제1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위 취소 부분에 대한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1심에서 피고의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던 원심 판단을 뒤집은 결과다.
법원은 해당 서적의 내용이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아닌 학문적 주장 및 의견의 표명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학문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했다.
피해자 측, "'자발적 매춘·협력자' 표현이 명예훼손" 주장
이번 사건의 원고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원고들은 피고 P씨가 저술한 도서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으로 성을 제공한 매춘부', '일본군의 동지이자 전쟁의 협력자'로 묘사하여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이 표현들이 허위 사실의 적시이며, 허위 여부를 떠나 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심각하게 침해했으므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피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 P씨는 이 사건 도서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상호이해를 목적으로 하며, 문제의 표현들은 일본군에 의한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주의, 가부장제 등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학문적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법원, "역사적 사실, 끊임없는 재구성 과정" 학문의 자유에 무게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의 손을 들어준 주된 근거로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들었다.
1. '사실의 적시' 아님:
재판부는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사실의 적시'에 관해, 역사적 사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 영역에서의 사실은 사후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사실이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고가 사용한 '자발성', '동지적 관계' 등의 표현은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일원으로서 피해자였으나 식민지인으로서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을 설명하거나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일 뿐, '자발적 매춘' 등을 단정적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고가 주장하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되기 어려운 광범위한 집단이며, 그 특성이 균일하다고 볼 수 없어 표현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의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고 보았다.
2. 인격권 침해 수인한도 내:
재판부는 피고의 서술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감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와 비교 형량해야 한다고 밝혔다.
피고가 도서의 집필 목적을 '한일 양국의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한 화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힌 점, 표현이 위안부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논란이 된 서술의 내용과 전체적인 취지를 종합할 때, 피고의 표현이 객관적으로 원고들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으로서 상당성을 벗어나 위법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며, 이는 통념상 수인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역사적 견해, 법적 책임 대신 공개 토론 영역으로
이번 판결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 시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의 보호 범위를 명확히 제시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재판부는 다소 불편하거나 통상적이지 않은 견해가 제시되었을지라도, 그러한 주장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쉽게 인정하게 되면 자유로운 의견 표명의 자유가 지나치게 위축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피고의 견해는 법적 책임의 영역이 아닌 관련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및 사회적 공개 토론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법리적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