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수능 '불량 사인펜 사태'...성적 취소소송·국가배상 청구 가능할까
2025 수능 '불량 사인펜 사태'...성적 취소소송·국가배상 청구 가능할까
"잉크가 뚝뚝 떨어져 평정심 잃었다"
시·도 교육청 '제각각 납품'

잉크 뚝뚝 흐르는 수능 사인펜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 서울·경기·강원 지역 수험생들이 고사장에서 배부받은 컴퓨터용 사인펜에서 잉크가 과도하게 흘러나와 답안지 작성에 심각한 지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수능 이의 신청 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항의 글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게시판에 지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수험생들은 "잉크가 뚝뚝 떨어져 수정테이프만 수십 번 사용했다", "사인펜 때문에 평정심을 잃고 나머지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는 등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수능 이의 신청 675건 중 사인펜 문제는 100여 건을 넘어서며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경기 지역 사례가 많으며, 문제가 된 사인펜은 특정 한 곳의 제조업체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 관계자는 '생산상의 문제'라는 취지로만 언급했다.
사인펜 납품, 지역마다 달랐다
수능 사인펜은 평가원이 아닌 시·도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계약하여 확보한 뒤 관할 고사장에 배부한다. 이 과정에서 계약 기준과 가격이 지역마다 달라 품질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기교육청: 경쟁입찰로 한 납품업체를 선정해 22만 9천여 자루를 자루당 171원에 계약했다.
서울교육청: 지난해와 동일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어 17만 1천여 자루를 자루당 120원꼴로 납품받았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사인펜 납품 계약의 투명한 공개와 재발 방지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 역시 "품질 문제와 납품 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종합 점검 및 대책 마련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시험 실시에 하자' 논란! 수험생이 취할 수 있는 법적 구제 방안은?
이번 불량 사인펜 사태는 단순 민원 문제를 넘어, 수능 성적 처분의 적법성 및 국가배상 책임까지 거론되는 심각한 법적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변호사들은 수험생들이 평가원, 교육청, 심지어는 납품업체까지 상대로 법적 구제를 모색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1. "내 성적 돌려줘!" 성적 처분의 취소 가능성
평가원이 수험생에게 통지하는 수능 성적은 행정법상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인펜 불량으로 인해 시험에 지장을 받은 수험생들은 이 성적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쟁점: 평가원 측이 불량 사인펜을 배부하여 수험생들이 정상적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한 것은 수능 시험 실시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사 판례: 과거 명백히 틀린 지문이 포함된 문제를 출제하고 정답을 결정한 것이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판례가 있다. 이와 유사하게 불량 사인펜 배부 역시 시험 실시상의 하자로 평가되어 성적 결정 처분이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2.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국가 손해배상 청구
평가원은 수험생들이 정상적으로 답안을 작성할 수 있도록 적절한 품질의 사인펜을 제공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불량 사인펜 배부로 이 의무를 위반하였다면, 평가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행위책임이 성립되어 국가배상 청구가 가능해진다.
손해의 범위: 수험생이 입은 손해에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재수강 비용 등 실제 발생한 재산상 손해, 나아가 대학 진학 기회 상실로 인한 손해까지 고려될 수 있다.
핵심: 다만, 손해배상액 산정을 위해서는 불량 사인펜이 성적 하락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피해 수험생들은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불량 사인펜 현물, 답안지 사본, 당시 상황 기록 등)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3. 납품 계약 과정의 법적 문제
사인펜 납품 계약 과정 자체에도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의계약 적법성: 서울교육청이 지난해와 동일한 업체와 맺은 수의계약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적법하다. 이에 대한 적법성 검토가 필요하다.
부정당업자 제재: 불량 사인펜을 납품한 업체가 계약 이행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계약 해제·해지 사유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의 부정당업자 제재도 가능할 수 있다. 계약에서 정한 제품과 다른 제품을 납품한 행위는 부당하거나 부정한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는 판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피해 수험생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응 방향은?
다수의 수험생이 동일한 피해를 입은 이번 사안의 특성상, 집단적인 권리 구제 방안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다.
행정소송: 수험생들은 우선 평가원에 이의신청 및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여기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성적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공동소송: 현행 법률상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아닌 일반적인 공동소송(민사소송법상 통상공동소송) 형태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여러 수험생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법적 비용 및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재발 방지 대책: 교육부와 평가원은 사인펜 품질 기준 명확화, 사전 검수 강화, 납품 계약 투명성 제고, 시·도 교육청별 납품 기준 통일 등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수능은 한 개인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시험이다.
평가원 등 시험 주관기관은 수험생들이 어떠한 외부적 요인 없이 공정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으며, 이번 불량 사인펜 사태는 이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책임의 중대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교육 당국의 책임 있는 자세와 함께, 피해 수험생들의 적극적인 법적 구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