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아버지의 2천만 원 빚, 사장 '모른다' 경찰 '죄 안돼'
과로사 아버지의 2천만 원 빚, 사장 '모른다' 경찰 '죄 안돼'
'대납 관행' 믿은 대가…유족 '처분행위' 외면한 경찰, 법조계 '명백한 법리오해'

과로로 사망한 화물차 기사의 2천만 원 과태료를 사장이 대납 약속 후 어겼으나, 경찰은 사기죄가 아니라며 사건을 종결했다. / AI 생성 이미지
과로로 세상을 등진 화물차 기사에게 2천만 원의 과태료 폭탄이 남겨졌다. 업계 관행을 믿고 사장이 대신 내줄 거라 여겼지만, 사장은 발뺌했고 경찰은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아버지가 이의신청을 포기한 행위의 법적 의미를 외면한 경찰 결정에, 법률 전문가들은 '수사미진'과 '법리오해'를 지적하며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법적 대응에 힘을 싣고 있다.
'대신 내줄게' 믿음의 배신…녹음 파일만 남았다
과로 산재로 사망한 화물차 기사 A씨. 그는 11개월간 일하며 과적 단속에 7차례 적발됐고, 과태료는 2천만 원까지 불어났다. 도로교통법상 과적 과태료는 운전자에게 부과되지만, 사업주의 지시 사실을 증명하면 책임을 넘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추레라 업계에서는 운전자가 이의 제기하는 대신 사업주가 과태료를 대납하는 것이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A씨는 적발될 때마다 사장에게 즉시 보고했다. 하지만 사장은 첫 번째 과태료에 대해서만 형식적인 이의제기로 시간을 끌 뿐, 나머지 6건은 외면했다.
결국 A씨가 "왜 과태료 안 내주냐"고 따져 묻자, 사장은 "차고지로 고지서 주소를 바꾸라니까 안 바꿨지 않냐"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 대화는 A씨의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녹음됐다. 하지만 사장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고, A씨는 빚을 떠안은 채 눈을 감았다.
'사기 아니다' 경찰 판단에…전문가들 '명백한 법리 오해'
A씨 사망 후, 유가족은 2025년 1월 내용증명을 보내 사장에게 채무 이행을 촉구했으나 묵살당했다. 결국 사기 혐의로 고소하자 사장은 "과태료의 존재를 몰랐다", "상속인들이 상속포기를 해 채무가 소멸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경찰은 사장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불송치(사건을 검찰에 보내지 않음)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없고, 피의자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사실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경찰의 판단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배우자분이 한정승인을 하고 자녀들만 상속포기를 한 것이므로 채무가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닙니다. 경찰이 이 부분을 확인하지 않고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만 수용한 것은 수사미진에 해당합니다"라고 꼬집었다. 상속받은 재산 내에서만 책임을 지는 '한정승인'을 '상속포기'와 혼동한 경찰의 수사 부실을 지적한 것이다.
법률사무소 유(唯)의 박성현 변호사는 더 나아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명백한 법리오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A씨가 사장의 대납을 믿고 과태료 이의 신청을 포기한 행위가 사기죄의 '처분행위'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A씨의 행위가 재산상 손해를 감수하는 법적 행위라는 의미다.
'형사는 압박, 민사는 회수'…투트랙 전략이 해법
다수의 전문가들은 유가족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 신청을 제기하는 동시에, 민사소송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형사 고소만으로는 2천만 원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에서다.
법무법인 게이트 김범석 변호사는 "아버님은 사장의 대납 약속을 믿고 본인의 이름으로 과태료를 부과받는 처분행위(묵인 및 이의신청권 포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라며 사기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사장이 대납 의무를 면함으로써 얻은 재산상 이익 또한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로웰 김훈희 변호사는 보다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형사는 '압박 수단', 민사는 '실제 회수 수단'"이라고 규정하며 두 절차를 병행할 것을 권했다. 형사 이의신청을 통해 사장을 압박하면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과태료 상당액을 돌려받는 '투트랙' 전략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조언이다.
아버지의 억울함, 법정에서 풀릴까
결국 공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유가족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이의신청서에는 사장의 거짓말을 입증할 녹취록과 내용증명, 그리고 경찰이 간과한 '한정승인' 사실관계가 핵심 증거로 담길 예정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장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권리(이의신청)를 포기한 행위가 '기망에 의한 처분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법원의 판단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고되고 긴 싸움이 예상되지만,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유가족의 외로운 법정 다툼은 이제 막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