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서 이웃에 밀쳐져 전신마비…가해자는 '심신미약' 무죄
엘리베이터서 이웃에 밀쳐져 전신마비…가해자는 '심신미약' 무죄
70대 노인 뇌출혈·골반 골절로 영구장애…법조계 “형사 무죄와 별개, 가해자 가족 상대 민사소송으로 피해 보상받아야”

70대 노인이 이웃의 '묻지마 폭행'으로 영구 장애를 얻었으나 가해자는 심신상실로 형사 무죄를 선고받았다. /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엄마는 이제 걷지도, 알아보지도 못해요”…가해자 풀려나자 무너진 가족
70대 노인이 이웃이 휘두른 '묻지마 폭행'에 쓰러져 영구 장애를 얻었지만, 법원은 가해자에게 심신상실(정신장애로 사물 변별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상태)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형사 처벌은 불가능해졌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가해자 본인과 그 가족을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열려있다고 입을 모은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쿵’…한순간에 무너진 일상”
사건은 평온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작됐다. 9층에 사는 70대 피해자는 몇 년 전 뇌경색 판정을 받아 거동이 불편했지만, 10년 넘게 살아온 익숙한 보금자리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15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이웃 주민이 내리려는 피해자를 강하게 밀쳤다.
피해자는 그대로 튕겨 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같은 층 주민의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진단 결과는 참혹했다. 골반뼈는 골절됐고, 뇌출혈로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후 피해자는 가족과 웃고 떠들 수도, 스스로 걸을 수도 없는 몸이 됐다. 언어장애와 정신장애까지 얻어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가족들은 “가해자의 가족들은 ‘가해자가 조현병이 있고 우리는 돈도 없으니 배 째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년의 사투 끝에 ‘무죄’…항소 기회마저 놓쳤다”
1년간의 힘든 법적 싸움이 이어졌다.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법원은 가해자에게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정신 상태에서 벌인 일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설상가상으로 재판 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진 탓에, 가족들은 항소 시기(판결 선고 후 7일)이 지나서야 무죄 판결 사실을 알게 됐다. 형사 절차를 통해 판결을 뒤집을 기회마저 놓친 것이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후 심신미약 감경이 의무가 아닌 법원의 재량으로 바뀌었지만, 이는 형을 줄여주는 ‘심신미약’에 해당한다. 이번 사건처럼 아예 책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심신상실’은 여전히 무죄 사유다.
법무법인 선승의 안영림 변호사는 “조현병을 이유로 심신장애가 인정되어 무죄가 선고되었다면 2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형사는 끝났지만 민사는 시작…‘가해자 가족’에게 책임을 물어라”
형사 처벌의 길이 막힌 듯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법률 전문가들은 다른 길을 제시했다. 바로 ‘민사소송’이다. 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다고 해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가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가족’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신우 이진영 변호사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는 법률상 감독의무가 있고 이를 위반하여 정신질환자가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그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법 제755조(감독자의 책임)에 따른 것이다.
법무법인 신의 박지영 변호사 역시 “상대방의 무죄 판결과 별개로 상대방 및 상대방 가족들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치료비 및 위자료 등)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형사 책임과 민사 책임의 판단 기준과 증명의 정도가 다른 만큼, 민사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치료비, 간병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등을 청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구제 방안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재심’과 ‘국가 구조금’이라는 마지막 카드
물론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경태 변호사는 “항소기간이 지났더라도 ‘재심’이라는 특별한 불복절차가 있다”며 “심신미약 판단의 근거가 된 정신감정 결과나 조현병 진단에 의문이 있다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자료 수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재심은 판결을 뒤집을 만한 명백하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돼 문턱이 매우 높다.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 방법도 있다. 김 변호사는 “국가로부터 범죄피해자 구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며 “중상해 피해자의 경우 치료비와 장해급여 등 상당한 금액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이를 신청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가해자에게 충분한 배상을 받기 어려운 피해자를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