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약속 믿었는데"…낙태 강요한 남자, 처벌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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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약속 믿었는데"…낙태 강요한 남자, 처벌할 수 있나?

2026. 01. 23 11:19 작성
최회봉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caleb.c@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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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상 '강요죄'는 폭행·협박 입증해야…민사상 '자기결정권 침해' 위자료는 가능

결혼을 약속했던 남성에게 낙태를 강요 당한 여성이 상대방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임신하면 결혼하자"던 약속은 아이가 생기자 "책임 못 진다"는 압박으로 돌변했다. 병원에서 '기적의 임신' 진단을 받았지만, 결국 여성은 원치 않는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낙태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 낙태를 강요한 남성을 처벌할 길은 없을까? 법조계는 형사 처벌의 문턱은 매우 높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로 보고 민사상 위자료를 청구할 길은 열려있다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법적 쟁점을 짚어봤다.


"기적의 임신"... 석 달 만에 깨진 결혼의 꿈


A씨는 2025년 10월, 한 유흥주점에서 만난 남성과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만남을 시작했다. 평소 자궁 건강이 좋지 않아 임신이 어려웠던 A씨는 "임신하게 되면 절대 못 지운다"고 미리 말했고, 남성은 "임신하게 되면 결혼하자"고 약속했다.


그 말을 믿었던 A씨는 두 달여 뒤인 12월 29일,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남성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그는 "책임질 수 없다"며 낙태를 강요하고 압박했다. 병원에서조차 "이번에 기적으로 임신이 되었고 중절수술을 하게 되면 앞으로 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그의 요구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지난 1월 15일, 수술을 받았다. A씨는 "저를 만나는 동안 헌팅술집도 몇 차례 방문하였으며, 상대방의 전 여자친구에게도 낙태해야 할 거 같다며 연락을 취해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며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형사처벌의 높은 벽…'폭행·협박' 입증이 관건


A씨는 남성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하지만, 형사 법정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2021년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으면서, 현재 임신중절 자체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남성의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혐의는 형법상 '강요죄'지만, 성립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법무법인 리브의 임원재 변호사는 강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중절수술을 강요해야 하므로, 단순히 '자주, 반복적으로 요구했다'는 정도로는 죄를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 역시 "실무적으로 연인 또는 결별한 연인 관계에서 남성이 낙태를 요구하여 여성이 낙태한 뒤 강요로 고소할 경우 실제 강요로 처벌되는 비율은 배우 낮고 거의 대부분 사건은 재판까지 가지도 않고 불입건, 불송치, 불기소 종결됩니다"라고 현실을 짚었다.


다만, 법무법인 태강 조은 변호사는 "상대방이 전 여자친구와 연락하며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다면 이는 명예훼손 또는 모욕죄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라고 추가적인 법적 검토 가능성을 제시했다.


민사상 '자기결정권 침해'는 명백한 불법행위


형사 처벌과 달리,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핵심 법리는 '인격권 침해'다. 남성의 행위가 A씨의 '임신 유지 및 출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명백한 불법행위(민법 제750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더신사 법무법인 김연주 변호사는 낙태를 강요받은 사실과 그로 인한 건강상 손실, 정신적 피해를 증명하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특히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는 "수술비를 상대방이 지불한 사실은 낙태 강요에 대한 간접적인 입증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경우 A씨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와 수술 후 발생한 치료비 등 '재산상 손해'를 청구할 수 있다.


'약혼 파기'보다 '부당한 교섭 파기' 책임 물을 수도


단순 위자료 청구를 넘어, 남녀 간의 '약속'을 법적으로 따져볼 수도 있다. 바로 '약혼 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이다.


다만 '약혼'이 성립했다고 인정받으려면 '결혼하자'는 말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법원은 통상 양가 상견례, 결혼 날짜 지정, 예물 교환 등 구체적인 혼인 준비 행위가 있었는지를 따진다. A씨처럼 교제 기간이 짧고 이런 정황이 불분명하면 약혼 관계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 한 법원은 유사 사건에서, 임신 사실을 알자 중절수술을 주장한 점 등을 볼 때 진실한 혼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부산가정법원 2014. 12. 4. 선고 2013드합2057 판결).


하지만 약혼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다. 법원은 '계약교섭의 부당한 중도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을 인정한다. 결혼이라는 '계약'을 교섭하는 과정에서 한쪽이 신뢰를 저버리고 부당하게 관계를 파기해 상대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면, 그 역시 불법행위로 보고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승소의 열쇠 '카톡·녹음·진단서'…증거 확보가 최우선


어떤 법리를 적용하든 소송의 승패를 가를 열쇠는 '증거'다. 법률 전문가들은 남성이 낙태를 종용하고 압박한 사실, 결혼을 약속한 정황 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자료를 체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 어진 신영준 변호사는 강요 정황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나 녹음 등 자료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태 변호사 또한 향후 임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사 소견서 등 의료 기록 확보를 권장했다.


남성과의 대화가 담긴 녹음이나 메시지, '향후 임신 가능성 저하'가 명시된 의사 소견서, 정신과 상담 기록 등은 법정에서 A씨의 고통을 증명하고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결정적 무기가 될 것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므로, 신속한 대응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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