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 322만원 '먹튀' 논란…만남 0회인데 "기간 만료" 환불 거부
결혼정보회사 322만원 '먹튀' 논란…만남 0회인데 "기간 만료" 환불 거부
개인적으로 짝 만나 결혼 앞둔 A씨, 가입 1년 지나 환불 요청했다 거절당해…법조계 "회사의 소극적 영업은 채무불이행, 불공정 약관 다툴 여지 충분"

A씨는 가입비 322만원을 냈지만 1년 동안 단 한번의 만남도 주선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결혼정보회사는 계약기간이 지났다며 환불을 거절했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가입비 322만원, 받은 건 프로필뿐…만남 0회에 '기간 만료' 통보
인생의 짝을 찾기 위해 322만 원을 냈지만, 정작 인연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생긴 A씨는 뒤늦게 결혼정보회사에 환불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계약 기간 1년이 지나 환불해줄 수 없다"는 차가운 답변이었다.
A씨는 가입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만남도 주선 받지 못했다. 300만 원이 넘는 거액의 가입비는 이대로 공중분해되는 것일까. A씨의 사연을 통해 잠자고 있던 소비자의 권리를 짚어본다.
A씨는 2024년 8월, 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며 부푼 꿈을 안았다. 계약 조건은 '12개월 동안 총 3회 만남 주선', 비용은 322만 원이었다. 하지만 가입 이후 회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적극적인 만남 주선은커녕,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는 흔한 알림 문자 한 통 없었다.
그러는 사이 A씨는 개인적으로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약속하게 됐다. 2025년 9월, A씨는 더 이상 서비스가 필요 없다고 판단해 회사에 연락해 환불을 문의했다. 그러나 회사는 계약서상의 '12개월' 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환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A씨가 받은 서비스라고는 이성의 프로필 몇 장이 전부였다.
계약서가 왕?…'소극적 영업'은 회사의 채무불이행
결혼정보회사 측은 계약 기간 만료를 방패로 내세운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회사의 '소극적 영업' 행태가 법적으로 다툴 소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민법 제390조가 규정하는 '채무불이행(계약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에 해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쉴드의 이진훈 변호사는 "결혼정보회사가 적극적인 만남 주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이는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회사는 돈만 받고 소비자가 요청할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계약에 따라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다.
법무법인 한별의 김전수 변호사 역시 "회사 측이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않았거나 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이 입증될 경우, 이는 계약 불이행 및 '불완전이행'으로 주장하여 환불을 요청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받은 프로필 몇 장은 계약의 본질인 '만남 주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관리비 들었다" 반론엔…"불공정 약관은 무효"
회사 측은 "실제 만남은 없었어도 회원 관리, 프로필 검색 등에 비용이 발생했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법적으로 따져볼 부분이 많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6조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이나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을 무효로 본다. 소비자가 실질적인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못했음에도 기간 만료를 이유로 전액 환불을 거부하는 조항은 대표적인 불공정 약관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결혼정보회사 계약을 '계속거래'로 보고 소비자의 중도해지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5다222654 판결) 또한 계약 해지 시 회사가 실제 제공한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관련 비용을 위약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A씨의 경우, 만남 주선 0회라는 명백한 사실이 회사 측의 반론을 무력화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내 돈 돌려받는 3단계…내용증명부터 소액심판까지
A씨와 같이 억울한 상황에 놓인 소비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3단계 대응을 조언한다.
첫째, '내용증명' 발송이다. 이는 법적 절차에 앞서 개인의 요구사항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우편 제도로, 회사에 보내는 최후통첩과 같다. 내용증명에는 계약 사실, 회사의 의무 불이행(만남 미주선, 기간 만료 미고지 등), 환불 요구 금액과 근거를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회사가 압박을 느껴 합의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둘째,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 신청이다. 내용증명에도 회사가 응하지 않으면 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소비자원은 양측의 주장을 듣고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합의를 권고하거나 조정 결정을 내린다. 이는 소송보다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드는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셋째, '소액사건심판' 청구다. 분쟁조정마저 결렬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법원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환불 요구액이 3,000만 원 이하이므로 일반 민사소송보다 절차가 신속한 소액사건심판을 이용할 수 있다. 회사의 채무불이행과 약관의 부당성을 입증한다면 승소 가능성은 충분하다.
기자의 시각
이번 사례는 '계약서 지상주의'에 빠진 일부 서비스 업체의 관행에 경종을 울린다. 계약은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약속이지만, 그 약속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적극적 이행 의무'가 내포되어 있다. 수백만 원의 비용을 받고도 팔짱만 끼고 있다가 기간 만료의 함정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정당한 영업 행위라 볼 수 없다.
소비자는 더 이상 잠자는 권리 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고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찾아 나설 때, 비로소 시장의 룰도 공정하게 바로잡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