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n번방 수법 판박이였던 또 다른 '박사'⋯법원 "합의 못했지만 노력했다" 집행유예
[단독] n번방 수법 판박이였던 또 다른 '박사'⋯법원 "합의 못했지만 노력했다" 집행유예
n번방 수법처럼 피해자 신상정보 확보 후 협박
"피해 정도 파악 어렵다" 서울중앙지법,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단독] n번방 수법 판박이였던 또 다른 '박사'⋯법원 "합의 못했지만 노력했다" 집행유예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2020-03-24T19.35.25.318_302.jpg?q=80&s=832x832)
피해자를 협박해서 성착취 영상물을 만들게 한 '박사'의 수법과 판박이인 사건. 그러나 재판부는 또 다른 '박사'를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것도 같이 뿌릴게. 참고로 영상도 내가 가지고 있는 거 알지? 네가 자초한 거다."
대학생 A씨(20대⋅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학생 B씨의 나체 사진을 우연히 손에 넣었다. 한 단체 채팅방에서 다른 남학생이 올린 걸 다운받아 저장한 것이다.
나체 사진을 얻자마자 곧바로 협박을 시작했다. 나체 사진을 갖고 있으니 "내 말대로 하라"고 갖가지 요구를 했다. "알몸으로 셀카를 찍어서 보내라"거나 "속옷을 머리에 쓰고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명령'했다.
B씨가 거부하면 A씨는 협박을 했다. "다른 형들 반응을 보자"며 A씨와 B씨가 모두 아는 사람들을 들먹였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B씨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체 사진을 보내서 사회적으로 매장하겠다는 협박이었다.
이에 B씨는 A씨의 변태적인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A씨는 검은색 펜으로 가슴에 "☐☐"이라고 쓴 뒤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이는 텔레그램에서 피해자들을 협박해서 성착취 영상물을 만들게 한 '박사'의 수법과 판박이다. 시간이 갈수록 요구하는 수위가 가파르게 올라갔다는 점도 똑같았다.
A씨의 이런 '원격 추행'은 2019년 1월 11일부터 같은 해 5월 31일까지 반년 가까이 이어졌다.
B씨는 A씨를 신고하지 못했다. 또 다른 피해자 C씨가 신고하지 않았더라면 더 끔찍한 일을 당했을 수도 있다.
대학생 C씨는 지난해 4월 "용돈이 부족하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 글을 보고 A씨가 접근했다. A씨는 "입고 있던 속옷을 주면 30만원을 주겠다"며 "△△△△대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속옷을 두고 가면 돈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C씨가 그 말대로 따랐지만, A씨는 돈을 보내지 않았다. "학과에 소문을 다 내겠다" "조교에게 당신이 이런 걸 팔고 있다고 말하겠다"며 협박을 했다. 하지만 C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CC(폐쇄회로)TV와 통신자료를 몇 번 확인하자 A씨는 금방 잡혔다. 여기서 사건이 끝났다면 A씨는 사기죄와 강제추행미수 정도로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으로 끝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A씨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살펴보면서 사건이 커졌다. 경찰이 A씨 자택을 수색하면서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압수했는데, 그 속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수십 건이 쏟아져 나왔다.
특이하게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중에는 머리에 속옷을 쓰는 등 특정한 행동을 한 경우가 많았다. 검찰이 수사한 결과에 따르면 A씨가 이 영상을 다운로드 받은 때는 지난해 4~5월. 'n번방'이 한창 성착취 동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였다.
휴대전화에서는 이상한 메시지도 확인됐다. 바로 A씨가 B씨에게 협박한 메시지였다.
이제 사건은 연쇄 강제추행에 아청법 위반 사건이 됐다.
경찰은 B씨의 피해 사실을 확인했지만 B씨는 끝까지 진술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물증에서 확인한 문자메시지와 사진 등을 바탕으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추성엽 판사는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 이유로 "경찰이 피해자 B씨의 구체적인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협박 메시지로 인해 A씨의 요구대로 B씨가 사진을 보낸 증거도 명확했지만 "기존에 피고인(A씨)과 피해자(B씨)가 주고받던 대화 내용 등에 비추어 촬영된 영상만으로는 피해 정도를 정확하게 가늠하기 용이하지 아니하다"고 추 판사는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렇게도 썼다.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합의를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즉, 피해자가 합의해주지 않았지만 합의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해서 선처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n번방' 밖 또 다른 '박사'는 우리 주위에서 함께 빛을 보며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