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종업원이 휘두른 양주병에 맞아 다친 손님, 재판에서 진 이유
[단독] 여종업원이 휘두른 양주병에 맞아 다친 손님, 재판에서 진 이유
술 취해 난동부린 손님, 직원이 휘두른 병에 맞아 이마 다쳐
재판의 쟁점은? 손님과 직원의 '쌍방 폭행 vs. 정당 방위'
![[단독] 여종업원이 휘두른 양주병에 맞아 다친 손님, 재판에서 진 이유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2019-10-23T17.47.46.595_816.jpg?q=80&s=832x832)
술 취해 난동을 부리던 손님이 바 종업원이 휘두른 700ml 짜리 양주병에 맞아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3월 21일 새벽 3시 15분쯤 서울 용산구의 한 작은 바(Bar). 종업원 윤모(여·27)씨가 좁은 바를 사이에 두고 50대 남성 손님과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이 날카로워지더니 고함에 가깝게 변한다. 윤씨 옆에 있던 매니저(여·32)가 중재에 나섰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그냥 집에 가시라구요!”
윤씨 발언에 남성은 벌떡 일어나 의자를 내팽개쳤다. 거칠게 손가락질을 하더니 옆에 놓인 의자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윤씨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대꾸했다. 누가 먼저인지 몰라도 서로에게 침도 뱉었다. 이후 윤씨가 앞에 있던 물병을 집어 남성 얼굴에 물을 뿌렸다. 남성도 술잔에 담긴 술을 윤씨에게 뿌렸다.
남성 손에 쥐어있던 술잔이 윤씨에게 날아가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다행히 술잔은 윤씨 얼굴에 맞지 않고 뒷쪽 선반과 바닥에 차례로 부딪히며 산산조각 났다.
남성이 주먹을 쥔 채 고함을 지르며 윤씨에게 팔을 휘둘렀다. 매니저가 남성을 막았다. 남성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뒤로 휘청였다. 그때 윤씨가 술병을 집어 남성에게 휘둘렀다. 700mL 짜리 양주병이 남성 이마에 내리꽂혔다.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큰 움직임 없이 꼿꼿하게 서있던 윤씨는 이후 전화기를 들어 경찰을 불렀다.
지난 21일 열린 서울서부지법 국민참여재판에서 나온 진술과 재판정에서 상영된 CC(폐쇄회로)TV 영상을 종합한 사건의 전말이다.
바 종업원 윤씨는 양주병으로 김모(54)씨에게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특수상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윤씨는 상해를 입힌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밤 늦은 시각, 여성 둘이서 술에 취해 의자를 던지고 유리잔을 던져 위협하는 김씨를 막을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쟁점은 윤씨 행동이 정당방위인지 여부였다. “병을 휘두른 건 손님 김씨의 위협적 행동을 방어하려는 목적"이라고 본다면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이날 재판에선 김씨가 바를 방문했을 때부터 윤씨가 술병을 휘둘렀을 때까지 그곳에서 벌어진 정황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사건 당시 바에 설치된 CCTV 영상도 여러 번 재생됐다.

지난 21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 법정에서 특수상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 윤씨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박선우 기자
먼저 피해자 김씨가 증인석에 앉아 배심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그날 자신이 주문한 것과 다른 술을 제공받은데다 술값을 선결제하라는 요구를 받자 감정이 상한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12년산을 주문했는데 10년산이 나왔다고 했다. 거기에 윤씨가 자기 술을 허락없이 자기 잔에 따른 뒤 버리기까지 해서 항의를 한 직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항의하는 내게 오히려 윤씨가 먼저 침을 뱉고 욕설을 시작했다”며 “물병을 들어 물을 뿌리기까지 하기에 화가 나 술잔에 담긴 술을 윤씨에게 한 차례 뿌렸다”고 말했다. 이후 윤씨가 술병을 휘둘러 자신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피해자 김씨 주장을 “윤씨와 김씨가 쌍방폭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행위”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일방폭행이 아닌 쌍방폭행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김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딸뻘인 윤씨가 내 가족을 두고 심한 욕설을 해 참기 힘들었다”며 “윤씨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의 주문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종업원에 항의했는데 윤씨가 폭력적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윤씨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술병을 휘둘렀다고 하지만 영상을 보면 공포에 질려있는 모습이 아니다"며 “김씨와 똑같이 욕설을 하고 침을 뱉었다. 김씨를 술병으로 때린 후에도 어딘가 전화를 하며 바 안에서 침착하게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검사는 “윤씨가 (술병을 휘두르는 대신) 현장을 피할 만한 충분한 상황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 법정에서 특수상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 윤씨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박선우 기자
이어 “윤씨는 꼭 술병이 아니어도 손으로 방어할 수도 있었다"며 “위험한 물건인 술병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형법 제21조 정당방위를 구성하는 요건 중 하나인 상당성을 들었다.
상당성이란 공격에 따른 대응이 합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칼로 찌르려는 상대방을 주먹으로 막으면 정당방위지만, 반대로 주먹으로 때리려는 상대를 칼로 찌르면 안 된다는 의미다.
검사는 윤씨의 행위를 ‘현재’의 급박한 위험이라고도 보지 않았다. 윤씨가 술병을 휘두른 시점은 김씨가 의자를 넘어뜨리고 침을 뱉는 행동이 다 끝난 다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취객인 김씨가 폭행행위를 지속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윤씨는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려고 한 것 뿐"이라고 변론했다.
유일한 목격자는 현장에 있던 바 매니저였다. 매니저는 “술에 취한 김씨는 윤씨가 집에 들어가라고 다독이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며 “부모님은 몸 파냐, 대학 나왔냐, 그러니 여기에서 일한다는 성희롱적인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는 감옥에 가면 안 되니까 CCTV를 가리고 사람을 때린다고 해 공포감을 일으켰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윤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바에 있던 의자 4개와 유리컵을 집어 던져 파손시켰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성적인 발언은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했고, 유리컵을 던진 것에 대해서는 “물 묻은 손으로 컵을 쥐고 있어 미끄러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목격자인 바 매니저는 피해자가 "성희롱 발언을 하고 의자 4개와 유리컵을 집어 던져 파손시켰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검사는 목격자인 매니저가 친분이 있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는 건 아닌지 물었다. 재판부 역시 “윤씨와 친해 유리한 증언을 하려는 심정은 알지만 정말 기억하는 것만 답하라”고 주의를 줬다. 이에 매니저는 “네”라고 답했다.
매니저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판사의 질문에 “밤에 일하는 젊은 여성이 취객을 대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이 생긴다”며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엔 피해자 행동이 너무 거칠고 무서웠다”고 진술했다.
사건이 일어난 바는 출입구가 한 곳이다. 김씨가 출입구 쪽에 있었고 바와 분리된 유일한 공간은 화장실이었지만, 당시 잠금장치는 고장 난 상태였다.
배심원 7명과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는 재판이 시작된 지 약 6시간만에 평의를 시작했다. 재판정 밖에선 변호인과 피고인 측이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
오후 8시 50분 판결 선고가 시작됐다. 재판장 이정민 부장판사는 “배심원 7명 만장일치 결정으로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 피고인이 바라던 정당방위가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무죄를 받기 위해 필요한 정당방위가 깨졌으니 이제 남은 건 유죄 선고 뿐인 것 같았다.
하지만 판사는 “피고인은 무죄"라고 선언했다. 이 대목에서 윤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정당방위가 아님에도 무죄가 나온 건 (정당방위 대신) ‘처벌할 수 없는 과잉방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 법정에서 특수상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 윤씨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날 윤씨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불가벌적 과잉방위'를 인정받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선우 기자
그 논리는 이렇다.
① 윤씨가 술병을 휘두른 행위는 상당성(비례의 원칙)을 초과한 행동이다. 난동 부리는 손님을 상대로 술병을 휘두른 건 용인될 수 없다는 취지다. 과도한 대응이었다. 그러므로 정당방위는 인정할 수 없다.
② 하지만 처벌할 수 없는 ‘불가벌적(不可罰的) 과잉방위'다. 왜냐면 늦은 밤 불안하고 공포스런 상황에서 이뤄진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
결국 윤씨 측이 주장했던 "늦은 밤 여자 두 명이 일하는 곳에서 술취한 남성이 난동을 부린 상황"이 특수했음을 재판부와 배심원이 인정한 것이다.
윤 씨는 재판정을 나와 두 변호인에게 허리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