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전부터 다른 세입자 보증금 못 준 집주인, 전세사기로 고소될까?
계약 전부터 다른 세입자 보증금 못 준 집주인, 전세사기로 고소될까?
계약 전 '임차권등기' 이력이 고의성 입증 핵심
형사 고소로 압박 및 증거 확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전세 계약이 만료됐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A씨. 집주인 B씨로부터 "보증금 1억 2,000만원을 돌려주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까지 받았다.
석 달 전, 엘리베이터에 붙은 채권자의 전단을 보고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던 A씨는 이미 B씨의 건물에 20억원대 가압류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이 뒤이어 드러났다.
B씨 소유의 다른 부동산 등기부를 열람해 보니, A씨의 계약 시점보다 앞서 다른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신청한 '임차권등기명령' 이력이 2건이나 있었던 것이다. B씨가 운영하는 회사 소유 부동산은 세금 체납으로 압류된 상태였다.
처음부터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도 의사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A씨는 B씨를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을지, 형사 고소가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도움이 될지 궁금해졌다.
계약 당시 이미 '무자력' 상태…사기죄의 핵심은 '고의'
변호사들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나 의사 없이 계약을 했다는 점이 입증되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봤다. 단순히 만기일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채무불이행'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겨내 법률사무소 전용제 변호사는 "핵심은 계약 당시 이미 반환능력·의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를 숨기고 보증금을 받은 것인지"라고 설명했다. 사기죄의 고의는 계약 당시의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A씨의 사례처럼 계약 이전부터 다른 임차인의 임차권등기명령이 있었던 상황은 사기죄의 '고의'를 입증할 중요한 정황이 된다.
로버스 법률사무소 신은정 변호사는 "다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등기가 붙은 이력이 계약보다 앞서 있다면, 임대인은 자기 형편을 알면서 새 보증금을 받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유) 효성 서동민 변호사 또한 임대인이 변제 의사나 능력 없이 보증금을 받은 것으로 보여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분석했다.
형사 고소의 실익…'압박'과 '증거 확보'
그렇다면 형사 고소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변호사들은 형사 고소 자체만으로 보증금이 자동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임대인을 압박해 합의를 유도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민사소송에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는 실익이 있다고 조언했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는 "형사 고소는 임대인을 압박하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심리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설 조민성 변호사는 "형사 절차를 병행하는 실익은 다른 임차인들의 피해 현황이나 자금 흐름처럼 개인이 확보하기 어려운 자료가 수사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 있다"고 짚었다.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를 통해 확보된 증거는 민사소송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보증금 회수의 '본게임'은 민사…'임차권등기'부터 서둘러야
변호사들은 형사 고소와 별개로 보증금을 회수하기 위한 민사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조언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는 "이사를 해야 한다면 먼저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등기가 실제 완료된 것을 확인한 뒤 전출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임차권등기를 해야 이사를 가더라도 기존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지급명령 신청이나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통해 집행권원(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권리)을 확보해야 한다.
김정묵 변호사는 임대인이 이미 반환 불가를 선언한 만큼, 이의신청으로 시간을 끌 가능성이 높아 처음부터 소송과 가압류를 함께 검토하는 편이 실효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