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도 없고, 증거도 없고, 억울함만 있었다…당신이 모르는 재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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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도 없고, 증거도 없고, 억울함만 있었다…당신이 모르는 재판 이야기

2022. 11. 14 11:02 작성2022. 11. 15 11:08 수정
안세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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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아사리판'이었다 (1)] 소액사건 재판 취재기

원고와 피고의 변호사가 서로 논리로 반박하고 맞서는 TV나 영화 속 법정 모습. 이와 달리 변호사 없이 진행되는 '나 홀로 소송'의 법정 모습은 어떨까. 로톡뉴스가 직접 취재해봤다. /셔터스톡·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논리 대 논리'로 맞서는 변호사들의 날카로운 공방.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법정 내 모습이지만, 현실에선 다르다. 변호사 3만명 시대가 열렸지만, 정작 법정엔 변호사가 없다.


현실 속에선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수임료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통계를 봐도, 민사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 중 한쪽이라도 변호사 없이 소송을 수행하는 비율이 93%에 달한다. 이런 현상은 소액 사건(소송을 통해 받고자 하는 금액이 3000만원 미만인 사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변호사 없이 진행되는 대다수의 재판은 드라마에서 보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로톡뉴스는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서울중앙지법 소액사건 재판부 8곳을 직접 다녀왔다. 그곳은 마치 '아사리판' 같았다.


증거는 없고…"억울하다"는 말만 반복

당사자 : "원고(피고)가 거짓말을 하는데, 그걸 어떻게 제가 입증합니까? 증거가 없으니까 재판하러 왔죠."

판사 : "재판은 증거에 의해서 판단하는 겁니다. 증거가 없으면 패소 위험을 부담한다니까요?"


10분에 1번꼴로 이와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다.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현명한 판사님께서 진실을 밝혀달라"고 읍소했다. 그런데 정작 이를 입증할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읍소는 법적 의미가 없다. 재판에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서만 가능한 게 원칙이기 때문.


이는 변호사에겐 당연한 상식이지만, 나 홀로 소송에 나선 이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억울하다"는 말만 반복하거나, "증거가 없으니 알아서 판단해달라"고 하는 등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주장을 펼쳤다.


당사자 : "저희는 재판까지 오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계약서 같은 건 써두지도 않았습니다."

당사자 : "저 사람 완전 사기꾼이에요, 사기꾼. 판사님"

당사자 : "다 거짓말입니다, 판사님."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과는 별개로 이런 주장에 대해 판사들은 다음과 같이 일축했다.


/셔터스톡·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증거도 없이 '나 홀로 소송'에 나서 판사 앞에서 읍소하는 모습을 법정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셔터스톡·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판사 : "재판은 증거재판주의입니다. 법에 나와 있어요. 저한테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세요."

판사 : "한 차례 기일(재판하는 날짜)을 더 드릴 테니까, 그때까지 (증거를) 준비해보세요."

판사 : "더 하실 거 없으면 변론 종결하겠습니다."


기본 절차를 법정 경위가 알려줘야 하는 현실

법정 밖 모습도 법정 안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2별관 제205호 법정 복도. 한 중년 여성이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의 우는 소리가 법정 안까지 들릴 정도의 대성통곡이었다.


재판에서 패소한 것에 대한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아니었다. 알고 보니, 피고(소송을 당한 사람)였던 해당 여성 A씨의 재판은 열리지도 않았다. 원고(소송을 건 사람)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경우 재판이 한 차례 연기되고, 그때도 원고가 출석하지 않으면 소송이 취하(철회)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 역시 변호사에겐 당연한 상식이지만, A씨에겐 그렇지 않았다. A씨는 잔뜩 겁을 먹은 채 법정 경위에게 하소연했고, 경위는 그런 A씨를 한참 동안 어르고 달래야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법정 밖도 법정 안의 '아사리판'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A씨 : "(울면서) 왜 재판이 안 열리는 거예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이 사람(원고)은 왜 안 나온 거예요?"


경위 : "선생님이 잘못한 게 아니에요. 우실 필요가 없어요. 원고 측 연락이 안 돼 재판이 안 열린 것뿐이에요. 재판이 진행된 것도 없고요. 다음 달에도 원고가 안 나오면 소송이 취하되고, 이 사건은 없던 일이 될 거예요. 아무 일도 벌어진 게 아니니까 진정하시고 돌아가시면 돼요."


경위의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A씨는 한참을 울다 자리를 떠났다.


사건 1개당 15초 내외로 재판 끝내겠다는 계획

물론 변호사가 없어도 판사 등이 당사자에게 법적 절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만 해준다면, 재판이 보다 재판답게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밀려드는 사건을 처리하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마치 회전문을 통과하듯, 새로운 사건이 수없이 법정을 들어오고 나갔다.


지난 8일 오전 10시에 열린 서울중앙지법 민사4단독 재판. '오늘의 재판안내' 일정에 10분간 진행하기로 한 사건의 개수는 무려 38개. 1분에 약 4개의 사건을 처리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단순 계산했을 때, 사건 1개당 15초 내외로 재판을 끝내겠다는 셈이다.


/안세연 기자
이날 '오늘의 재판안내' 일정에 10분간 진행하기로 한 사건의 개수는 38개였다. /안세연 기자


아무리 경험 많은 판사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건을 성심성의껏 처리하기엔 버거웠다. 결국 다음과 같은 식으로 재판이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판사 : "원고,피고 더 하실 거 있습니까?"

원고&피고 : "없습니다."

판사 : "그럼 다음 기일에 선고하겠습니다."


민사소송법은 엄연히 재판에서 구두(말)에 의한 변론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서면(글)에 의한 변론은 보충적인 것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러한 원칙은 지켜지기 힘들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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